모성애를 그려낸 장대한 블록버스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예매했었다가 뒤늦게 동시간대 1순위 영화의 취소표를 구하게 되며, 관람을 미뤄야 했던 영화 <새벽의 약속>을 그로부터 약 일 년이 지난 후 관람하게 되었다. 사실 상 오늘 이후로는 극장에서 못 볼 것 같아 부지런히 관람에 나선 이 영화는,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의 생애를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 니나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로맹의 전기를 찬찬히 그려나간다. 실제로 로맹이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을 극중 인물이 읽는 방식을 통해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다양한 우여곡절을 거쳐 프랑스의 소설가로 성장하게 된 로맹과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 니나의 이야기를 시간의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낸다.
불과 저번 달에 개봉한 <호밀밭의 반항아>를 관람한 후 리뷰에도 썼다시피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그린 작품은 이미 숱하게 많이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숱하게 많이 제작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 <새벽의 약속>이 예술가의 삶을 그린 다른 전기 영화와 차별화되는 장점을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 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확실한 매력을 갖춤으로써 13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제법 몰입감을 자아낸다.
로맹 가리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생애를 그리고 있지만, 유년기, 청년기, 성인기까지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영화는 중반부까지 그의 예술적 재능을 그려나간다기보다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지독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했음에도, 특별히 내세울 만한 그 무엇 하나 없었음에도 아들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아들이 재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헌신하고 노력한 니나와 그런 그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간 아들 로맹의 삶은 영화 내내 무척 흥미롭게 펼쳐지며 곳곳에 삽입된 유머와 위트는 종종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짧지 않은 러닝타임동안 적잖은 몰입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비결은 단연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이다. 자신의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의 믿음때문에 괴로워하는 동시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 성인의 로맹을 연기한 피에르 니네이를 비롯 각기 다른 시기의 로맹을 연기한 세 배우의 호연도 무척 두드러지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샤를로뜨 갱스부르이다.
매 작품마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도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어머니이자 강인한 여장부였던 인물 니나를 무척 훌륭히 소화해낸다. 사실상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 이 영화를 관람하기로 맘먹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상황에서 그녀의 놀라운 열연을 원없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영화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모성애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그려낸 한 편의 가족 드라마이자, 두 번의 콩쿠르 상을 수상한 위대한 소설가의 전기 영화이며, 멕시코-폴란드-프랑스-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의 당시 상황을 간접 체험하게 만드는 시대극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초라한 한 가정에서 시작해 전개가 거듭될수록 장대한 블록버스터로 향하는 전개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흥미를 자아낸 영화였다고 생각이 드는 한편, 영화의 모티브가 된 로맹 가리의 동명 소설을 빠른 시일 내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물씬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