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영 빈약하기만 한 스토리.
<브로크백 마운틴>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관람한 오늘의 두 번째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일찍부터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만큼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던 이 영화는, 한마디로 참 애매모호한 작품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분명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지는 못할 듯한, 재밌으면서도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상실감에 빠져 지내는 소녀 클라라가 한 편의 동화처럼 신비한 사건을 겪게 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대부 드로셀마이어 집에서 벌어지는 성대한 파티를 찾은 클라라는 대부가 마련한 선물을 찾아 나서며 신비한 마법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되고, 엄마 마리를 여왕으로 모시는 신비한 왕국에서 환상적인 모험을 하게 된다. 사탕의 왕국을 이끄는 슈가 플럼에게 여러 자초지종을 들은 클라라는 엄마가 남긴 선물을 열기 위해, 그리고 네 개의 왕국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두가 두려워하는 네 번째 왕국인 즐거움의 왕국으로 향한다.
모든 동화를 실사화할 기세인 최근 디즈니의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지난해 개봉한 <미녀와 야수>나 릴리 제임스 주연의 <신데렐라>처럼 누구나 아는 동화 속 이야기를 그대로 각색했지만, 그것이 실사화로 구현되었을 때 자아낼 수 있는 일종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경우가 첫 번째라면,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얼마 전 개봉한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처럼 익숙한 캐릭터를 가져오면서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낸 경우가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동화 속 인물과 설정들을 가져오면서 여기에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스토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후자의 성격을 띠는데, 문제는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꼭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여야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원작의 색깔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호프먼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의 스토리를 배제한 채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봤을 때, 클라라가 신비한 마법의 세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왕국으로 모험을 떠나며 네 개의 왕국의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나름 흥미롭게 다가온다. 팀 버튼 감독의 2010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된 소녀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기시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클라라가 든든한 조력자들과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나름 킬링 타임용 영화로써의 재미는 쏠쏠히 안겨준다.
비록 터무니없는 스토리임에도 마냥 나쁘지 않게 다가왔던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다소 뻔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가 제법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색감과 영상미 때문으로 보인다. 왕국으로 향하는 길의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풍경이나 각기 다른 네 개 왕국의 화려한 풍경은 여느 디즈니 영화들처럼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하며, 주인공 클라라를 연기한 매켄지 포이의 <인터스텔라> 속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쩍 자란 모습과 공주를 연기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을 비주얼 또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로 다가온다. 여기에 한편으로는 굳이 이 배우들이 이런 캐릭터를 연기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키이라 나이틀리, 헬렌 미렌, 모건 프리먼 등 든든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하지만, 특별할 건 없을지라도 무난한 재미를 선사하던 영화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후반부에 이르러 급격히 힘을 잃고 만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어떤 설정과 함께 더더욱 흥미를 자아내던 것에 비해 사건을 해결해내는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의적으로 느껴져, 이전까지 차곡차곡 잘 쌓아오던 영화의 매력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게 만든다고 할까.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동심까지 자극해냈던 <미녀와 야수>에 비해 다소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게도 만들며, 그 정도로 조금은 유치하고 전형적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마치 한 편의 '매켄지 포이 영상 화보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켄지 포이의 활약만큼은 무척 두드러지며, 크리스마스를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살린 영상미는 제법 두근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화려한 영상미에 매혹되기에는 전개가 거듭될수록 빈약해져 버린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 작품이자 중간중간 삽입된 발레 시퀀스마저 유기적으로 어우리지 못하는 인상을 남기고 마는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세 명의 자녀 중 둘째인 클라라가 자신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다는, 엄마 마리의 클라라를 향한 지나친 편애가 남기는 찝찝함은 어쩌면 좋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