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온갖 개성이 넘쳐흐른다.
불과 지난 주까지만 해도 관람을 망설일 정도로 내키지 않았다가 국내외 평가가 상당히 좋은 만큼 급 관심이 생긴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유료 시사를 통해 관람하였다. (유료 시사라는, 용어 자체부터 이상한 꼼수가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시행되는 것은 다소 당황스럽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체 어떻길래' 하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관람한 이 영화는, 그냥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일단 보시라고 적극 추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는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서 악에 맞서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10대 소년 마일스가 방사능 거미에 물려 그 또한 스파이더맨 능력을 갖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선 마일스는 우연히 피터 파커와 만나게 되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다시 돌려내고자 차원이동기를 개발 중인 킹핀의 음모를 알게 된다.
아마 이 영화가 썩 기대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2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무려 세번의 리부트가 이뤄진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한다는 것때문일 것이다. 개봉 소식이 떴을 때부터 '또 스파이더맨이야?' 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숱하게 봐 왔던, 그리고 MCU에서는 다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네번째 리부트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피로감을 유발했다고 할까.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다른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혹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와도 전혀 다른 확고한 개성과 스타일로 러닝타임 내내 확실한 재미를 선사한다.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내용을 독특한 유머와 함께 압축하는 오프닝부터 보통의 영화가 아님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 영화는, 이후에도 전에 본 적 없는 비주얼과 스토리로 연신 흥미를 자아낸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코믹스에서 출발한 만큼 마일스의 머리 속 생각을 말풍선으로 표현하거나 각종 의성어를 자막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레고 무비>를 처음 봤을 때만큼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차원의 이동이라는 소재를 독특하게 살려내며 스파이더맨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다는 설정 역시 무척 매력적이다. 한때는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였지만 메리제인과 이혼하고 몸도 망가져버린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피터 B. 파커부터 그웬 스테이지, 페니 파커, 스파이더맨 누아르 등 각자의 개성이 확실한 캐릭터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는 꽤나 쏠쏠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평범한 소년 마일스가 점점 늠름한 히어로로 성장해가는 과정 또한 지극히 전형적임에도 충분히 흥미롭다. 영화 내내 귀를 사로잡는 탁월한 OST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앞서 언급했듯 <레고 무비>를 봤을 때나 올해 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봤을 때처럼, 극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참신함과 개성으로 중무장한 이 영화는, 상영관을 나섬과 동시에 얼른 4DX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단순히 볼거리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언젠가부터 아카데미 애니메이션상은 자연스럽게 디즈니가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내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트로피는 <인크레더블 2>나 <주먹왕 랄프 2>가 아닌 이 영화에게 돌아갈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며,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 등장하는 쿠키 영상도 절대 놓치지 마시기를.
스탠 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물이 단연 스파이더맨인 만큼, 영화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탠 리에 대한 추모도 잊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이토록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그를 향한 일종의 헌사처럼 보이며, 그렇기에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틀림없이 이 영화의 굉장한 애정을 쏟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