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고 신랄한 블랙 코미디.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인 샐리 포터 감독의 신작 <더 파티>를 관람하였다. 당장 상영 시작 30분 전까지 흑백 영화인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그 어떤 정보도 없이 관람한 이 영화는 간단히 말해, 7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군더더기 없이 꽉 채우며 생각 이상의 큰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자넷이 그녀의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두를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자넷을 필두로 그녀의 남편 빌, 냉소주의자 에이프릴과 그녀의 애인 고프리드, 레즈비언 커플 마사, 지니와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은행가 톰까지. 한정된 공간에 모이게 된 일곱 인물은 그들 사이에 비밀이 하나 둘 폭로되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장관 임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지난 5월 개최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도 초청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자넷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오직 일곱 명의 인물만을 등장시킨 채 전개가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이나 얼마 전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은 <완벽한 타인> 등을 떠올리게도 만드는데, 언급한 두 영화처럼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 관계를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일곱 명의 인물만이 등장하고 그들이 움직이는 동선도 거실, 부엌, 화장실, 정원으로 제한되는 만큼 영화는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 이러한 인상은 오프닝 시퀀스를 제외하면 영화의 전개 자체가 리얼타임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더욱 극대화되는데, 결국 배우들 간의 안정적인 연기합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곱 명의 배우들은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며 더더욱 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편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영화 <대학살의 신>과 <완벽한 타인>, 그리고 존 웰스 감독의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처럼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보이는 이들이 쉽게 터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비밀이 폭로됨과 동시에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점에서 '척'하는 이들의 가식과 위선을 풍자적으로 꼬집기도 한다. 부부, 연인, 친구 등 다양한 관계로 얽혀있는 이들이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의 변화가 선사하는 재미,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닌 영화 속 캐릭터이기에 편안하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그 크기가 꽤나 상당하다.
그런 한편,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 자넷이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설정을 통해 영국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감독의 냉소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로 다가오며,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위트 요소들과 엔딩에서 밝혀지는 묵직한 한 방 역시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결론적으로 러닝타임이 짧은데다 깊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선사하는 만큼 여건이 된다면 한번쯤 관람하시길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당장 <완벽한 타인>을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 혹은 <완벽한 타인>을 아쉽게 느낀 이들이라면, 그만큼 대환장 파티가 펼쳐지면서 그보다 냉소적인 태도로 풀어내는 이 영화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