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진 시리즈의 화려한 재기.
18.12.25. @CGV용산 4DX
크리스마스를 맞아 (혹은 그냥 늘 그렇듯이) 제대로 북적북적한 용산CGV에서 관람한 오늘의 영화 <범블비>.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더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만큼 조금의 기대치도 없었다가 공개 후 국내외 평가가 상당히 좋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이 영화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바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었다. 당장 지난해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에 0.5점을 줬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발전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스핀오프 리부트 격인 이 영화는 오토봇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B-127이 지구로 오게 된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디셉티콘의 공격으로 목소리를 잃은 채 피신해있던 B-127는 우연히 18세 생일을 맞이한 소녀 찰리와 만나게 되고 아빠의 죽음 이후 방황하던 찰리는 자연스레 그와 교감하며 친목을 쌓게 된다.
점점 커지는 스케일과 달리 스토리는 제대로 망가져버린 이 시리즈 중 유일하게 로튼토마토 신선 마크를 획득한 이 영화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스케일을 키우기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한 듯 보인다. 자세히 말하자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화려한 액션 등의 볼거리가 아닌 찰리와 범블비가 서로 만나 교감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이러한 스토리는 영화 전반에 걸쳐 굉장히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세상을 떠난 아빠를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으로 방황하던 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은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B-127과 교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흡사 <E.T.>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그와는 다른 느낌에서 제법 감동을 자아낸다. B-127에게 범블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라디오를 고쳐 목소리를 잃은 범블비에게 대화의 창을 열어주기도, 위기에 처한 그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과정 범블비와 찰리의 우정이 점점 돈독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씬들은 때때로 잔잔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그렇다고 영화가 현란한 액션을 배제한 채 오로지 드라마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트론에서 오토봇과 디셉티콘 간의 전투가 벌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제법 화려하게 펼쳐지는 영화는 이후에도 각종 액션을 통해 볼거리를 자아내는데, 비록 시리즈 중 가장 적은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이전처럼 엄청나진 않을지라도 영화의 액션 시퀀스들은 충분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기대하는 재미를 충족시켜준다.
더불어 제목부터가 <범블비>인 상황에서 영화 내에서 범블비가 뿜어내는 매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한없이 순진해보이는 초중반부의 모습부터 위기를 막기 위해 디셉티콘에 맞서는 후반부의 모습까지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만큼, 시리즈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 중 하나의 캐릭터에 집중한 스핀오프로써 꽤나 성공한 것처럼 다가온다. 더불어 찰리를 연기한 헤일리 스테인펠드 또한 그녀가 단독 주연을 맡았던 <지랄발광 17세>를 비롯한 전작들에서보다 더더욱 그녀만의 매력을 자아낸다.
분명 위에서 언급한, 볼거리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했다는 특징이 결국 이 영화의 호불호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듯 보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시리즈는 자고로 제대로 때려부셔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또는 <E.T.>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라인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겐 별다른 재미를 선사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이 시리즈에 대한 불신을 충분히 상쇄시켜줄 만큼 매력적인 스핀오프이자 리부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대신, 왠지 그냥 이 영화로 유종의 미를 잘 거뒀다 생각하고 더이상 시리즈를 늘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이유는 왜일까..
ps. 올해 총 6편의 영화를 4DX로 관람한 상황에서 이 영화의 4DX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났던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의 효과를 가볍게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