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벅찬 여운.

by 뭅스타

19.01.01. @CGV평촌


일정이 안 맞아 보지 못했던 지난해 부산 영화제 때부터 관객들의 평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 기대가 상당했던 그 영화 <가버나움>을 2019년 첫 영화로 관람하였다. CGV Hello 2019 기획전으로 정식 개봉보다 조금 일찍 관람한 이 영화는 그냥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올해 첫 영화가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영화는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아 나이조차 불분명한 소년 자인이 누군가를 칼로 찔러 교도소에 수감된 후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은 이후 자인이 겪어야 했던 험난한 여정을 그려내면서 점점 강렬한 몰입감과 흡입력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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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자녀가 총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왁자지껄한 집 안에서 자인을 비롯한 자녀들은 부모에게 철저히 방치되어있다. 더이상 부모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아닌, 그저 돈을 벌고 식료품을 가져오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자신이 아끼는 여동생마저 원치 않게 집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리자 자인은 더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집을 떠난다.


자인이 집을 나오기까지가 영화의 초반부라면, 영화는 이후 자인이 우연히 머물게 된 놀이공원에서 에티오피아 출신의 난민 라힐과 그녀의 한살배기 아들 요나스를 만난 후의 과정부터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된 자인은 오랜만에 꿀같은 휴식을 만끽하지만, 결국 그 휴식조차 오래 가지 못한 채 열두살 남짓의 자인이 자신과 요나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서 겪는 일들을 쉽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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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소년 자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를 이를 통해 레바논의 열약한 현실을 무척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자녀를 책임지지 못하는 부모, 부모에 의해 열한살의 나이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하는 딸, 그리고 어린 소년이 홀로 거리를 배회해도 그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의젓해질 수밖에 없던 자인의 여정은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서 온갖 감정이 들끓게 만든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는 자인 역의 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과연 이것이 연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하고도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극의 몰입을 높이며 자인의 상황을 대변하듯이 수시로 흔들리는 핸드 헬드 촬영도 인상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런 가운데 요나스를 돌보며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 발버둥치는 자인의 모습은 이를 극장에서 편안하게 지켜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오며, 그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몇번이고 온 몸에 닭살을 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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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감정을 폭발하게 만드는 엔딩의 임팩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그저 또래 아이들과 뛰놀며 활기찬 유년기를 보내야 할 열두살의 나이에 신은 자신을 짓밟으려한다고 말하는 자인의 처참한 현실은, 그것이 단순히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작위적인 세계가 아닌 미처 알지 못한 레바논의 현주소처럼 느껴져 기나긴 여운을 자아내며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게 만든다. 꾹꾹 참아온 감정의 덩어리마저 기어코 터뜨리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은 아마 앞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TV를 통해서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우리나라가 결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님을 주입식으로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감히 지금의 현실을 불평할 수 조차 없을 것 같다. 120분 남짓의 러닝타임 내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게 만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도 강렬한 영화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며 제아무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해도 (물론 레바논뿐 아니라 프랑스, 미국까지 3국의 합작이기도 하지만) 제3세계 영화를 수입/배급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 그린나래미디어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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