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묘사와 신랄한 풍자, 란티모스만의 영화 세계의 절정.
19.03.04. @CGV명동역
생각 이상으로 인기가 많아 거의 매진이었던 주말동안은 관람을 미루느라 계획보다는 조금 늦게 관람하게 된 오늘의 영화 <송곳니>. (그럼에도 관크를 피할 수 없던 건 함정..) 매 작품마다 강렬한 비주얼과 흥미로운 서사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이라는 것만으로 봐야할 이유가 충분했던, 그렇기에 기획전으로 상영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던 이 영화는 역시나 무척이나 강렬한 동시에 나의 취향을 너무나 제대로 저격해주었다.
영화의 초반부는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더 랍스터>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동시에 <더 랍스터>와 마찬가지로 전개가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점점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비로소 맞닥뜨리게 된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가히 충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영화는, 과도한 구속과 집착으로 자녀들을 집 안에 가두고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철저히 통제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조차 없는 세 자녀는 집 밖에는 끔찍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찰떡같이 믿은 채 철저히 부모의 통제 아래에서 스무 살은 족히 넘은 나이에도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간다.
왜 아버지가 그토록 자녀들을 구속하는지에 대해선 따로 언급되지 않음에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극도의 몰입감과 서늘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의미에서 영화는 굉장한 공포를 선사하기도 하는데 외부의 문명을 '악의 씨앗'이라고 표현하며 자녀들을 철저히 통제하려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만을 보고 배운 탓에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의 모습은 비범한 연출과 독특한 설정 속에서 몹시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표면적으로는 자식을 억압하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듯 보이는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더 나아가 단순히 가족 내의 이야기를 넘어 그릇된 독재와 세뇌로 사람들의 의지를 억압하고 그들의 생각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들을 향한 차가운 풍자로까지 다가온다. 잘못된 교육자 혹은 지도자를 만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 사회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는, 조금은 불친절하고 조금은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며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결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송곳니'는 통제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의미한다. 열린 결말로 끝맺는 만큼 결코 해피엔딩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음에도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왠지 모를 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누리기 위한 힘찬 움직임이 있었으며,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 이후의 스토리에서 또 한번 그런 움직임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어떤 잔인한 통제와 억압이라도 결국은 깨지고 말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어두운 분위기 속에 싹튼 한 줄기 희망은 강렬한 영화에 걸맞는 깔끔하면서도 매력적인 엔딩으로 다가온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그 어떤 영화와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는 소재, 스토리, 연출이 내내 펼쳐지는 만큼 누군가에게 감히 선뜻 추천할 수는 없을 듯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감독은 10년 전에도 무척이나 놀랍고 충격적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다. 충격으로 시작해 공포와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는 전개가 97분의 러닝타임을 몰입감으로 꽉 채우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한편, 이 영화까지 감독의 연출작 네 편을 보고 나니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정말 너무나 대중적인 영화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