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매력이 가장 약할 때의 당황스러움.
마블 코믹스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던 그 영화 <블랙 팬서>를 관람하였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첫 등장한 캐릭터 블랙 팬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 작품은, 분명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으로 적절한 재미를 선사하긴 했지만 그와 함께 아쉬운 부분도 꽤 많았던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최근 몇 년간 개봉한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 중에선 가장 무난하고 애매모호하게 느껴졌달까.
오프닝부터 단숨에 흥미를 끄는 영화는 와칸다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티찰라가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노리는 이들에 맞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로가 이끄는 일당이 비브라늄의 성분을 통해 엄청난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악용하려 하자 티찰라는 그를 포획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한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복수심을 키워오던 이른바 킬몽거는 티찰라를 무찌르고 그가 와칸다의 왕위를 계승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와칸다를 위협한다.
영화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티찰라와 클로 간의 갈등, 티찰라와 킬몽거 간의 갈등이 마치 두 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병렬적으로 펼쳐진다. 처음에는 각종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의 배경 역시 익숙하지가 않은 만큼 조금은 온전히 몰입하기 힘들게 느껴졌던 영화는 이내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들면서 티찰라를 비롯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와칸다 왕국의 전경은 화려한 색감과 그래픽으로 등장할 때마다 눈을 사로잡으며, 캘리포니아와 부산, 런던 등을 오가는 로케이션에서 각각의 공간을 활용한 방식 역시 흥미롭다. 특히 촬영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부산 로케이션은 생각보다 그 비중이 많은 데다 그곳에서의 액션 씬이 영화에서 액션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지는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특수한 기술이 더해진 블랙팬서 슈트를 입고 펼쳐지는 액션들은 마블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한 재미를 선사한다.
캐릭터들의 매력 역시 두드러지는데 어쩌면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비운의 인물 킬몽거와 나키아, 슈리, 오코예로 대표되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인다. 마틴 프리먼, 포레스트 휘태커, 안젤라 바셋 등 명배우들의 활약도 인상 깊은 가운데 특히 모션 픽쳐의 달인으로 불리는 앤디 서키스가 모션 픽쳐가 아닌 실제 그의 모습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꽤나 쏠쏠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의 매력이 두드러짐에도 불구 정작 매력이 극대화되어야 할 주인공 블랙 팬서의 활약은 어딘가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그가 영화에서 뿜어내는 매력이 다른 캐릭터들의 그것에 비해선 조금은 약하고 밋밋하게 느껴졌달까. 어떤 문제에 대해 고뇌하는 주인공은 이미 캡틴 아메리카가 충분히 보여준 데다 캐릭터 자체가 상당 부분 평면적으로만 느껴진 탓에 슈트를 입은 블랙 팬서가 아닌 와카다 왕국의 새로운 왕 티찰라로서의 매력은 더더욱 미적지근하게만 다가온다. 그보다 그와 대립 구도를 이루는 킬몽거에게 더욱 감정적으로 이입될 정도로.
더불어 전반적인 스토리 역시 크게 돋보이지는 못한다. 중간중간 인종 차별을 꼬집는 대사들은 제법 인상 깊게 다가오긴 하나 그러한 메시지가 영화 전체 플롯에 유기적으로 어우러졌는가에 대해선 의문을 남기기도 하며, 의식을 잃은 티찰라가 다시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중후반부의 전개는 조금 루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리하자면 언제나 중간 이상은 해주는 마블 코믹스인 만큼 무난히 즐기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 홈커밍> 등 최근 개봉한 다른 마블 솔로 무비들에 비해 주인공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 작품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본 영화 이후 등장하는 두 개의 쿠키 영상은 모두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하는 만큼 꼭 마지막까지 보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