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Apr 30. 2019

<바이스>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위트를 가미해서 풀어내는 방법.

19.04.11. @CGV평촌


오늘의 두번째 영화로 관람한 아담 맥케이 감독의 <바이스>. 감독의 전작 <빅 쇼트>가 선사한 만족감만으로도, (비록 분장상 한 부문 수상에 그쳤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기대하고 봐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도 쉽게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제목을 통해 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만 알 뿐 그 부통령이 누구인지, 어떤 내용인지 전혀 찾아보지 않은 채 관람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린과 교제 중인 딕 체니가 술에 찌들어 예일대에서 쫓겨나는 1960년대부터 부통령으로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린 시기까지 50여 년의 시간이 수시로 교차되며 전개되는 이 영화는 쉽게 말해 재기발랄함으로 시작해 서늘함으로 끝맺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딕 체니가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전반부는 미국 정치사에 대해 상당 부분 무지한 채로 관람한 만큼 각종 용어나 수많은 인물들의 등장이 조금은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전작 <빅 쇼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나름대로 친절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전작에서 보여준 속도감 있는 편집과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위트 섞인 유머들 또한 낯선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무척이나 신선한 연출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중반부의 크레딧 이후 펼쳐지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무섭고 경악스럽다. 조지 W. 부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딕 체니가 그저 허수아비 역할을 하는 데 그치는 부통령의 자리에서도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들을 벌이는 과정은 그것이 실화이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자아낸다.


뉴스로 사건을 접했던 2001년 그 날의 아침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9.11 테러 이후 벌어진 이라크 전쟁에 딕 체니라는 인물이 깊이 관여되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 대부분이 검은 음모에서 비롯된 거짓이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며, 한편으로는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위트와 풍자를 통해 풀어낸 아담 맥케이라는 감독의 뚝심과 강단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각각의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극의 몰입을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하지만, 언젠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길 응원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경우 이 영화에서의 활약으로는 <퍼스트맨>의 클레어 포이가 못 오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딕 체니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의 경우, 물론 <보헤미안랩소디>에서의 라미 말렉의 연기도 놀라웠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트로피는 그에게 돌아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혹은 후보 지명조차 실패한 <퍼스트 리폼드>의 에단 호크라든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빠른 편집과 위트를 통해 다루면서도 서늘한 풍자와 제법 긴 여운까지 선사했던 <빅 쇼트>처럼 딕 체니라는 인물이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끼친 가히 엄청난 영향력을 흥미롭게,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게 풀어낸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도 꽤나 적지 않게 다가온다. 하지만, 후반부의 서늘함에 비해 전반부의 전개나 몰입감이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체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의 만족감과는 별개로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ps. 절대 쿠키 영상이 없을 것 같은 장르의 영화이지만 엔딩 크레딧 중간에 감히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고도,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쿠키 영상이 등장하는 만큼 꼭, 꼭 놓치지 마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미성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