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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Apr 30. 2019

<장난스런 키스>

대만 로맨스에 대한 신뢰가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

19.04.16. @CGV평촌


일본의 원작 만화도, 이후 제작된 드라마나 영화도 전혀 안 봤을 뿐 아니라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만큼 크게 볼 생각이 없었지만, 감독의 전작 <나의 소녀시대>를 꽤 재미있게 본 데다 관객 수가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개봉 3주만에 관람한 오늘의 영화 <장난스런 키스>. 그래도 무난한 재미는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관람한 이 영화는, 가히 올해 현재까지 관람한 영화들 중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평때문에 관람을 미룬 <헬보이>도, 아니 어쩌면 숱한 화제를 낳았던 <자전차왕 엄복동>도 이것보단 낫지 않을까.

영화는 초반부만큼은 여타 하이틴 로맨스와 별 다를 것 없이 시작한다. 우연히 첫 만남에 입맞춤을 하게 된 A반 우등생 장즈수에게 첫 눈에 반한 샹친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전혀 가망이 없을 거라는 주위의 반응에도 꿋꿋히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물론 괴기하고 황당한 설정들이 난무하지만 나름대로 봐줄만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샹친의 소름끼치는 싸이코적 행동이나 대체 왜인지 몰라도 그런 그녀에게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다중인격같은 행동을 일삼는 장즈수의 합작은 충격적일 정도로 혼란스럽고 너무할 정도로 설득력이 없다.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두 주인공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곤욕스러운 영화는 머지않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들어간다. 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두 시간 여의 러닝타임을 버텼지만 결국 단 한 순간도 나아지기는커녕 더더욱 망가져만 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감히 올해 한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꼽고 싶을 지경이다.


개념도, 염치도, 상식도, 그 외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거의 모든 것도 찾아보기 힘든 샹친과 사람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놀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한 장즈수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은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설정들을 차치하더라도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안겨주지 못한다. 학교에서 인터넷 소설을 돌려보고 개봉일에 <늑대의 유혹>을 챙겨봤던 중학생 시절의 나라도 이 영화는 결코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온갖 단점은 때려박은 이 영화가 남긴 충격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굳이 영화의 장점을 꼽자면 오직 왕대륙이라는 배우의 매력이다. 감독의 전작 <나의 소녀시대>를 통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그는 사실상 '왕대륙 영상 화보집'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도 단순히 그를 보기 위해 영화를 챙겨본 팬들이라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활약을 선보인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샹친 역의 임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의 싸이코 기질 때문인지, 외국어임에도 얼마나 형편 없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연기력 때문인지 쉽사리 매력을 느낄 수 없던 게 흠이지만.


제아무리 구구절절 감상을 써내려가도 이 영화가 선사한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기는 힘들 것만 같다. 이 영화가 4.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줄까 고민하기도 했던 <나의 소녀시대>의 프랭키 첸 감독이 내놓은 작품이라는 것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영화의 스토리가 원작과 무척이나 유사하다는 것도 그저 놀랍고 무섭고 황당할 따름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청설> 등이 쌓아올린 대만 로맨스에 대한 기대가 단숨에 불신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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