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산으로 가버리는 컨저링 유니버스의 현주소.
19.04.21. @CGV평촌
더 이상 '컨저링 유니버스'라는 것이 기대치를 높여주진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외 평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무주공산의 극장가에 마땅히 볼 영화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관람한 오늘의 영화 <요로나의 저주>. 결론적으로 영화는 기대가 상당히 낮았던 탓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럭 저럭 볼 만 했다. 최소한 처참하기 그지 없었던 <더 넌>에 비해서는..
1673년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1973년의 미국에서 본격적인 전개가 펼쳐지는 영화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애나와 그녀의 두 자녀가 끔찍한 악령 요로나의 공격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애나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패트리샤의 집에 들어가 그녀의 두 아들을 임시보호소에 맡기는데 이것이 발단이 되어 누군가에게 원한의 대상이 되면서 평화롭던 애나의 가정은 한 순간에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전 '컨저링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그랬듯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장면들이 수두룩함에도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는 뻔뻔한 카피를 내걸고 있는 이 영화는, 특별히 극심한 공포를 안겨주지는 못 할지라도 나름대로 스토리 전개를 즐길 만한 흥미는 선사한다. 몇몇 장면에서의 인상적인 카메라 워킹이나 배치도 제법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결말로 치닫기까지의 과정이 나름대로 쫀쫀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쉽게 무시하기 힘든 단점들 또한 존재한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일삼으면서 공포를 자초하는 것이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오래된 클리셰라고는 하나,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유난히 답답하고 황당한 행동을 거듭하면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최대한 붙어 있어도 모자를 판에 굳이 각개전투를 하면서 '대체 왜 저러는걸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더 넌>처럼 공포 영화로써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과는 별개로 극심한 답답함을 선사하는 작품 속 설정들은 몰입을 깨뜨리고 만다.
문제는 주인공 가족이 강력한 힘을 악령에게서 탈출하고 평안을 되찾기를 바라고 응원해야 될 상황에서 그러한 답답한 설정의 연속은 결국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린 두 자녀 크리스와 사이먼이야 원래 이런 장르물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몸이 근질거려 안달나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러려니 할텐데, 그들의 엄마이자 실질적인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애나 또한 영 짜증나기만 하는 것은 꽤나 당황스럽다. 본인도 악령을 봤으면서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며 현실을 거부하며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딸의 팔에 생긴 상처를 봤으면서도 연고를 발라주지도, 밴드를 붙여주지도 않을 때의 당혹감은 다소 크게 다가온다.
또한, 클라이맥스의 전개까지 그런대로 흥미롭게 펼쳐졌던 것에 반해 모든 사건을 매듭짓는 엔딩이 조금은 뜬금없고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아쉽다. 사건을 마무리짓는 과정에서의 어떤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일종의 후련함이나 개운함을 선사하기보다는 '그럼 진작에 저랬으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의문을 남기고 만달까. 뭐, 바로 직전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성격 변화도 영 황당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정리하자면, 분명 의문을 남기는 설정들도 존재하고 공포 영화로써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공포 유발'의 성격도 약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만한 정도의 작품처럼은 느껴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나벨> 1편이나 <더 넌>보단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왠지 신작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불안해져만 가는 '컨저링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는 한 풀 꺾어버리는 영화였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