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현실은 개개인의 잘못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19.04.23. @CGV평촌
폭풍전야의 분위기가 감도는 극장에서 관람한 오늘의 영화 <러브리스>. 지난 2017년 부산 영화제에서 관람한 후 무려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된 이 영화는,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깊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보고 나면 또 얼마나 우울해질지 훤히 보였기에 재관람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다시 마주하길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한 아이의 하굣길을 천천히 뒤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혼을 준비 중인 보리스와 제냐 부부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이미 각자 새로운 이성과 살림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그들의 아들 알로샤의 양육권을 놓고 티격태격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방해만 되는 아들을 서로가 키우길 꺼려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알로샤가 집을 나서면서 이들 부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두 시간 남짓 되는 러닝타임 내내 실로 차갑고 서늘하게 전개를 이어가는 이 영화는 크게 보리스와 제냐,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또다른 남녀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전반부와 아들 알로샤가 실종된 이후 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후반부로 나뉜다. 가족 구성원이든 또다른 누구든, 서먹서먹한 이들이 사라진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게 되는 일련의 영화들이 인물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점차 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더더욱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무척 냉담하고 음울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마치 사라져 버린 알로샤처럼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도, 기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식이 실종된 상황에서도 자식을 낳은 것은 실수였다며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기만 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알로샤가 무사히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그에게 좋은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일대로 꼬인 인물들의 관계는 극심한 두통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한편, 전작 <리바이어던>에서도 불안정한 개개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이 사라진 러시아 사회 전반을 꼬집은 바 있는 감독은 얼핏 한 가족과 그들과 얽힌 몇몇 인물들 간의 이야기로 보이는 이 영화도 지금의 현실에 대한 냉소적 태도로 확대해 나간다. 제목 그대로 '사랑이 없어진' 사회에서 과연 그 '사랑 없음'은 누구의 잘못일까 혹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는 라디오와 TV 등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멘트부터 영화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군상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퍼져가는 현대 러시아의 병폐를 지극히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물론 영화 속 보리스와 제냐 부부의 모습은 실생활에서 마냥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족의 형태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키워나갈 수 없는 온갖 제약과 문제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사랑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러시아의 한 가족이 겪는 이야기를 넘어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크게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 영화가 남기는 씁쓸함이 더욱 크게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도 이것이 단순히 가공된 픽션이 아닌, 어쩌면 우리네 미래이자 현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그들이 원하던 대로, 바라던 대로 살아가게 됐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토록 사랑 없는 집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했음에도 왜 그들은 여전히 미소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문제일까, 아니면 더이상 온전한 행복과 온전한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이 사회의 문제일까. 만약 사회의 문제라면 과연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곱씹어봐도 마땅한 정답이 없기에 이 영화는 더더욱 깊은 우울의 골짜기에 빠지게 만드는 작품이자 그럼에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접근해봐야 할 문제를 차가우면서도 흡입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두 번까지는 어떻게 봤다고 하더라도, 차마 세 번을 마주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