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현실 속에서 궁지에 몰리는 소년들의 성장통.
19.04.26. @CGV평촌
며칠 전에 본 <러브리스>가 영화제에서 첫 관람 후 일년 반만에 관람이었다면, 오늘은 그보다도 일 년 전인 2016년 부산에서 처음 만난 후 2년 6개월만에 개봉한 <하트스톤>을 관람했다. (그 해 영화제에서 관람한 영화들이 <라라랜드>, <컨택트>, <분노> 등등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이 뒤늦은 개봉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처음 봤을 때에도 섬세한 연출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 영화는 다시 관람한 오늘, 더욱 쓸쓸하고 먹먹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한적한 아이슬란드의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토르와 크리스티안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하루종일 붙어다니며 우정을 키워나가던 둘은 토르와 이웃 소녀 베스의 관계가 발전되면서 점점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토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점점 크리스티안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통해 두 소년이 점점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7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퀴어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에 서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두 소년이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선을 섬세하고 잔잔하게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시작되는 전개 이전부터 토르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크리스티안, 그런 크리스티안과 다양한 경험을 나누며 그 역시 애정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토르, 이 두 소년의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로맨스는 광활하고도 황량한 마을 풍경과 어우러져 처연함의 정서를 자아낸다.
2016년 관람 당시 자비에 돌란 감독의 <탐엣더팜>을 연상케 했던 영화는 이번 재관람에서는 지난 해 개봉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제대로 확립조차 되지 않은 소년이 마음 속 깊이 자리잡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려 하고,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더욱 깊이 스며드는 과정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처럼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씁쓸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감정을 속시원히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쓸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작은 소문까지도 금방 온 마을에 퍼져버리는 영화 속 배경에서 토르와 크리스티안의 미묘한 관계는 그들을 점점 더 궁지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마냥 평화롭던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게 만든다.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웠을텐데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고독하고 위태위태한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 둘의 모습은 이미 이를 한번 지켜봤음에도 무척이나 먹먹하게 다가온다.
매력적인 데뷔작으로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과, 경력이 전무했음에도 안정적이고도 사려깊은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의 활약 또한 영화에 몰입을 높여주고 전개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결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냥 새드엔딩이라고도 할 수 없을 소년들의 아프고 괴로운 성장통은 이를 통해 더더욱 성숙해질 그들의 내일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만든다.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아가면 된다고 전해주고 싶은 소년들의 쓰라린 성장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