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놀라운 실화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능력.
19.04.26. @CGV평촌
<하트스톤>에 이어 관람한 오늘의 두번째 영화 <더 캡틴>. 개봉이 몇 번이나 미뤄진 만큼 과연 정식 개봉을 할 지 우렵스럽기도 했던 이 영화는 많은 의미에서 꽤나 혼란스러웠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관람한 상태에서 펼쳐지는 스토리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기에, 그리고 그것이 실화이기에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도 쉽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던 작품이었달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2주 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탈영병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 헤롤트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연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는 헤롤트가 우연히 장교의 군복을 발견하고, 생존을 위해 장교 행세를 하기 시작하는 초반부터 굉장한 몰입과 흥미를 자아낸다.
제작 국가를 막론하고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일 년에도 두세편씩 꾸준히 개봉하는 만큼 자칫 기존의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 <더 캡틴>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에서 보지 못한 참신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플라이트플랜>, <레드>,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을 연출한 바 있는 독일 감독 로베트트 슈벤트케가 자국에서 만든 이 영화는 전시에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서서히,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그려낸다.
장교의 군복을 훔친 헤롤트가 대위 행세를 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약탈, 강간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탈영병들에 대한 반감이 커져있는 시기에 당장 목숨을 건지기 위해 대위인 척 연기를 하기 시작한 헤롤트의 거짓말은 그칠 줄 모른 채 점점 커져만 가고, 결국 이는 그의 인간성을 잠식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눈 앞에 닥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일삼던 그는 급기야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탈영병들을 극악무도하게 처형하는 지시를 내리게 되고, 그가 총통의 지시를 받은 대위라는 것을 굳게 믿는 간부들에 의해 탈영병들은 무참히 살해당한다.
헤롤트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와는 무관하게 철저히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전개가 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입장에서 그의 거짓말이 탄로나지 않기를 자연스레 바라게 만들던 영화가 중반부 이후 그토록 응원하던 주인공의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선사하는 당혹감과 충격은 무척 크게 다가온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전쟁의 시기에 권력의 맛을 본 인간의 본성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광기에 얼마나 휩싸일 수 있는지를 차분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나가는 영화의 전개는 119분의 러닝타임 내내 극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택한 이등병에서부터 극악무도한 처형을 지시하는 대위 행세를 하기까지 점점 광기에 휩싸여가는 인물 헤롤트를 소화한 맥스 후바쳐 배우의 호연이 무척 두드러지는 가운데, 단순히 그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을 넘어 인상적인 조명 배치와 촬영으로 미쟝센의 미덕까지 선사하는 흑백의 영상미도 영화의 장점으로 다가온다. 사태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면서 자연스럽게 확대되는 스케일 역시 영화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추악함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광기와 타락으로 확장시켜나가는 엔딩 크레딧의 영상 역시 신랄한 극의 분위기를 마지막까지 유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정리하자면, 자연스럽게 동일시하게 되면서 참혹한 상황에서도 무사하기를 응원하게 되던 주인공이 광기에 휩싸여 점점 추악해져가는 상황이 선사하는 혼란스러움조차 무척 당황스러우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한 편의 냉혹한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충격적인 실화이자 비록 상영관이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상황에서도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