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Jun 17. 2019

<서스페리아>

지독할 정도로 불편하고 잔혹하다.

19.04.29. @CGV구로


오늘의 영화로, 라이브톡을 통해 정식 개봉보다 2주 가량 일찍 <서스페리아>를 관람하였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할 이유가 충분했던 이 영화는 뭐랄까, 배경 지식이 상당 부분 부족한 상태에서 그저 엄청난 혼란과 충격만을 안겨준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겹고 괴로운 152분간의 체험이었달까.

1977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정신적으로 문제를 앓고 있는 듯한 패트리샤가 정신과 의사 클렘페러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녀의 이야기를 비롯 각종 괴담을 늘어놓는 그녀의 모습이 초반부터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흥미를 더하는 가운데, 영화는 블랑 선생에게 무용을 배우기 위해 뉴욕을 떠나 베를린의 댄스 아카데미로 온 수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에필로그까지 총 7막의 구성으로 되어있는 이 영화는, 이 영화뿐 아니라 1977년에 만들어진 원작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이 관람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혼란을 안겨준다. 무용을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로 온 수지가 단숨에 블랑의 눈에 띄어 주연으로 발탁된 후 각종 기이한 일들을 겪는 과정은 마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처럼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을 자아낸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적잖은 혼란을 안겨주는 것은 단순히 공포 요소가 가미된 차가운 드라마일 것 같던 이 작품에 예상치 못한 소재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생각지 못한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고, 그것이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상상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 참신함이 눈을 사로잡는 동시에 극도의 당혹감과 충격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과연 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감조차 잡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잇달아 선사하며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함을 안겨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다 흥미롭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7년 전후 독일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부터 당시 독일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단체 바더 마인호프에 대한 언급이 계속 이어지는데다 자연스레 나치와 연관이 있음을 인지하게 해주는 설정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만큼, 감독이 40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실로 그로테스크한 원작을 가져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적 지식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만 하는 작품처럼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마냥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나의 얄팍한 역사적 지식으로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무척 자극적인 장면 묘사와 함께 펼쳐지다 보니 2시간 반의 러닝타임이 참으로 힘겹게만 느껴졌다고 할까. 본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된 라이브톡 해설을 통해 그저 물음표로만 가득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기는 했지만 도저히 이 영화와 다시 마주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아이 엠 러브>를 시작으로 지난 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이어진, 감독의 이른바 '여름 3부작'에 대한 기대를 갖고 관람했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같은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스타일로 무장한 것이 극심한 혼란을 안겨준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기존과 다른 장르에 호기롭게 도전해 인상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감독의 도전 정신만큼은 흥미로은 기억으로 남을 듯하며, 다코타 존슨과 틸다 스윈튼을 필두로 미아 고스, 클로이 모레츠 등 배우들의 놀라운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캡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