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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n 17. 2019

<스트롱거>

지극히 단조롭지만, 실화가 선사하는 감동만큼은.

19.04.30. @CGV평촌


4월의 마지막 영화로 CGV 2019아트RUNWAY 기획전으로 상영 중인 <스트롱거>를 관람했다. 당초 이 기획전으로 최소 두 세편의 영화를 더 보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한 편 관람에 그치게 된 것은 영 아쉽지만.. 북미에선 2017년 9월에, 일본에서조차 지난 해 5월에 개봉한 만큼 이 뒤늦은 상영이 (심지어 정식 개봉도 아니기에 더더욱)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는, 끔찍한 테러로 하반신을 잃은 한 남자의 실제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지난 2013년 4월 15일,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도 큰 충격을 안겨준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두 다리를 잃은 제프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연인이었던 에린의 마라톤 완주를 지켜보기 위해 결승선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제프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테러의 희생자가 되어버리고, 두 다리를 잃고 더이상 이전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그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과 환대 속에서 더더욱 깊은 방황에 빠진다.


시놉시스를 보고 예상했던 것처럼 영화는 자연스럽게 같은 사건을 소재로 하는 피터 버그 감독의 <패트리어트 데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패트리어트 데이>가 사고를 겪은 보스턴 시민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며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그려나갔다면, 이 영화는 사고 이후 영웅으로 추앙받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를 풀어내며 <패트리어트 데이>에서 다루지 못한 또다른 이야기를 깊이있게 건드린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를 잃었을 때의 절망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클 지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꿋꿋하게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제프가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대하는 시민들의 환대 속에서 더더욱 괴로워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제프의 연인 에린과 제프의 엄마 패티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프를 대하는 것을 통해 과연 저런 상황에 놓인 인물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점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영화의 전개 자체가 크게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는 하나, 자신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주변의 관심과 환대에 부담을 갖고 그러한 반응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를 옭아매던 주인공이 고난을 딛고 일어선 자신의 행동이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하게 되는 변화는 전형적인 듯 하면서도 소소한 감동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연기인데,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상복이 없는 배우 중 한 명인 제이크 질렌할인 과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도 어느 때처럼 인상적인 호연을 선보이며 극의 몰입을 높인다. 때때로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지점들까지도 제프가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 역시 결국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가 선보이는 연기 때문으로 느껴진다. 


한편, 제프의 연인 에린을 연기한 타티아나 마슬라니 또한 그녀가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만큼 영화 내내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아낸다. 하필 지난 해 여우조연상 후보진이 그야말로 막강했던지라, 이토록 인상적인 연기로 몇몇 비평가 협회상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쳐야 했던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 자체가 제이크 질렌할의 영화인 동시에 타티아나 마슬라니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정리하자면 그 당시 뉴스로 접했을 때부터 큰 충격을 안겨준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소재로 하면서 <패트리어트 데이>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이 영화만의 개성을 살려낸 동시에, 그저 누군가가 치켜세우는 영웅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한 인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찌 됐든 감독의 차기작 <할로윈>도 지난 해 가을에 이미 개봉한 마당에 이 영화는 6월이 되어서야 개봉을 하는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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