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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n 17. 2019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잔혹한 현실보다 꿈같은 판타지를.

19.05.02. @CGV평촌


개봉 당시 가볍게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인 줄 알고 관람한 많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그 영화 <판의 미로>를 13년 만에 재개봉을 통해 관람하였다. 개인적으로도 개봉 당시 관람한 이후 무척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어린 나이에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깊은 몰입감과 여운을 안겨주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봤을 이 영화는 1944년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다. 무척 음산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동화에 나올 법한 내레이션을 읊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임신한 엄마와 함께 새아빠 비달 대위가 지내는 깊은 산 속으로 가게 된 주인공 오필리아의 환상 같은 경험을 그려나간다. 자신을 쫓아온 요정을 따라 미로 속으로 들어간 오필리아는 그곳에서 자신을 지하 세계의 공주라고 말하는 정령 판과 만난다.


새삼 이 영화가 단 한 순간도 관객이 맘 편히 쉴 수도, 미소를 지을 수도 없게 만드는 몽환적이면서도 잔혹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이 작품은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일들이 펼쳐지는 '판타지'를 인상적으로 어우러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여전히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들의 습격이 이어지고 있던 시기에 새아빠 비달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극심한 산통을 겪고 있는 등 절망적인 현실에 더더욱 내몰리게 된 소녀 오필리아가 판을 만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그녀가 숨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가 된다.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지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판의 말을 듣고 오필리아가 하나 하나 임무를 수행해가는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든 인상적인 크리쳐의 모습과 세트 디자인 때문이라도 자연스레 극 중 상황에 빠져들게 만든다. 지금에서 다시 보더라도 영 적응하기 힘든 지하괴물이나 그보다 앞서 조력자인지 악당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판의 비주얼 등 등장하는 다양한 크리쳐들의 인상은 영화 전반에 감도는 기묘하고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일종의 판타지 장르물보다는 내전 이후를 다룬 드라마 장르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필리아의 엄마 카르멘의 말처럼,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에게 오필리아가 전하는 말처럼, 오직 절망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끔찍한 세상에서 오필리아가 지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은 그토록 순수한 소녀가 절망적인 세상에서 바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마지막 희망으로 다가온다.

기억을 잃은 지하 세계의 공주가 다시 아버지가 기다리는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판타지 영화로 접근하면 일종의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 일련의 과정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일인지 혹은 절망의 세상에서 오필리아의 상상이 빚어낸 허구인지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지점들을 던져준 채 끝나는 만큼 영화의 여운은 더욱 강하게 몰려온다. 그리고 아마 전개 자체는 해피 엔딩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씁쓸한 새드 엔딩처럼도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힘든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어른'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보여지는 결말을 그대로 믿고 기분 좋게 상영관을 나서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동화처럼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먹먹한 여운을 선사하기도 하며, 그런 한편 만약 오필리아가 씁쓸한 죽음을 맞이했을지라도 그것이 그녀가 그토록 처참한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지도 모르기에 애써 그 판타지 같은 결말을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바라보든 이 이야기가 무척 잔혹하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변함없지만.

확실히 아직 세상에 찌들기 전이었던 개봉 당시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평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의 관람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최근작 <셰이프 오브 워터>를 함께 떠올리며, 어쩌면 감독은 조금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이토록 씁쓸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숨 크게 내뱉을 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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