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만나는 신박한 범죄물.
19.05.15. @CGV평촌
장르 특성 상 뻔하면서 재밌기도, 혹은 그저 진부하기만 할 것도 같았던 영화 <악인전>을 관람하였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던 이 영화를 관람한 소감은 한 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만에 국내에서 마무리까지 깔끔한 범죄물을 만난 기분이랄까.
오프닝부터 청소년 관람불가임을 제대로 인지시켜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범을 잡겠다는 공통의 목표로 형사와 깡패가 힘을 합친다는 제법 참신한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불편한 관계로 얽혀있는 강력반 형사 태석과 경기 이남을 주름잡는 조직 보스 동수가 우연한 계기로 한 인물을 쫓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초반부터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높여준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더이상 경찰이 등장하는 범죄물이 기대를 모으기보다는 또 그저 그런 장르물이 유사 반복처럼 펼쳐지진 않을까 하는 불신을 가져다 주는 상황에서, 이 영화 <악인전>은 나쁜 놈을 잡기 위해 경찰과 깡패가 의기투합한다는 설정의 신박함을 흥미롭게 살려내며 여타 범죄물과는 다른 이 영화만의 확실한 개성을 갖춘다. 물론 스토리 자체의 결은 상당히 다르지만 (그리고 물론 만족도 차이도 상당히 크지만) 이러한 범죄물에 한정했을 때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이후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물론 중반부 이후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설정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살인을 이어오던 주인공이라는 이전까지의 설정을 고려했을 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전개를 풀어내기 위해 너무 편의적으로 풀어낸 것 같은 지점들이 두 차례 정도 나오면서 몰입을 저해시키기는 하지만, 펼쳐놓은 모든 이야기를 끝내는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초반에 보여줬던 신선한 매력을 자아내며 제법 깔끔한 뒷마무리를 선사한다.
지난 해에만 주연작이 다섯 편 연달아 개봉하며 이미지 소비에 대한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던 마동석 배우는 간만에 그에게 딱 어울리는 옷을 입으며 캐릭터의 전형성에 대한 아쉬움을 상당 부분 상쇄시킨다. 더불어 <대립군>과 <기억의 밤> 등 최근 출연작에서 (작품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김무열 배우와 <범죄도시>를 통해 얼굴을 알린 후 [킹덤]에서 인상깊은 호연을 선보인 김성규 배우의 색다른 활약 역시 부척 눈부시게 다가온다.
조금씩 양산형 범죄물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럼에도 차별화되는 개성을 갖추며 이를 흥미롭게 풀어낸다면 비슷비슷하게만 보이는 장르물 속에서도 큰 매력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의의는 꽤나 크게 느껴진다. 적당히 도덕적으로 타협하면서도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확실히 살린 채 끝맺는 영화의 후반부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후련하고 시원하게 다가온다.
칸 영화제 초청 이후 국내 개봉 이전부터 북미 리메이크를 확정짓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그것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크게 높여주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얼른 할리우드 리메이크판도 만나보고 싶어진다. 감독의 전작을 생각해봤을 때 아직 마냥 기대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차기작에 나온다면 속는 셈 치고 관람할 수는 있을 것 같은 감독을 발견한 듯한 반가움, 그리고 점점 피로감을 높여주던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비슷한 듯 새로운 얼굴을 만난 듯한 반가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