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

영화가 끝난 뒤 그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by 뭅스타

개봉 이후 평가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 웬만하면 거를 생각이었지만 제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던 <골든슬럼버>를 보고 나니 도전 욕구가 샘솟아 관람하게 된 <흥부>. 이 영화는 뭐랄까 특별히 돋보이지도, 그렇다고 유난히 튀는 무언가도 없는 그저 무색무취의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참 희한한 영화였달까.


영화는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던 헌종 즉위 14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어릴 적 홍경래의 난으로 헤어진 형 놀부를 찾기 위한 방안으로 자신의 이름을 거리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소설을 써내려 가던 흥부는 형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조혁을 만나게 되고 그와의 만남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흥부는 조혁과 그의 형 조항리의 이야기를 '흥부전'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집필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알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 '흥부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는 그 소설을 집필한 작가와 집필 배경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렸을 때 헤어진 형을 찾고자 하는 주인공 흥부가 조혁의 제안을 통해 그의 이름을 딴 소설을 써 내려가게 된다는 기본적인 설정은 제법 무난한 재미를 자아내며,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나름 흥미롭게 지켜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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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러한 설정이 적당한 재미를 선사했다고 해서 결코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극 장르임을 감안했을 때 그 어떤 현실 고증이나 개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단점은 중반부 이후로 극대화되는데 제아무리 헌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고 해도 왕이 보는 앞에서 그들 막무가내로 난리법석을 피우는 인물들의 행패와 그런 행패를 보고도 인상만 찌푸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왕의 대응은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진다. 더불어 본격적인 민란이 일어나는 후반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해야 하는 클라이맥스임에도 불구 그 황당무계한 전개 탓에 그저 허무맹랑하다.


촛불집회 이후 확실히 나라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더욱 심심찮게 개봉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가 영화 전체적인 스토리와 잘 어우러진 <박열>, <1987> 같은 작품들이 있는 반면 그러지 못한 <군함도>, <대립군>과 같은 작품들도 있었는데, 이 영화 <흥부>는 아쉽게도 철저히 후자에 속한다. 보다 느낀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에는 촛불집회 민심에 편승하고자 한 의도만 돋보일 뿐 이를 뒷받침해줄 최소한의 무언가는 전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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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결정적인 사건을 겪었다고 해도 한순간에 변화해버린 흥부의 지나치게 입체적인 성격부터 심심찮게 끝나버린 조항리와 김응집의 권력 다툼, 오직 흥부의 성격 변화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이 그 어떤 매력도 개성도 찾을 수 없는 주변 인물들, 별도의 연기 지도가 없었던 걸까 싶을 만큼 유난히 튀고 어색하게 느껴진 단역 배우들의 연기까지 영화는 요즘 관객들이 동할 만한 메시지 자체를 제외하면 그 어떤 장점도 찾을 수 없는 황당함의 연속일 뿐이다.


그나마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우 배우와 고 김주혁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이다. 이 둘의 연기만큼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지만, 그 외 정진영, 김원해, 정해인, 천우희, 정상훈 등의 배우들은 그들의 연기가 밋밋하거나 혹은 연기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어려울 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대체 어떤 인연으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만 한 김완선 씨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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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는 비록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나 이미 누구나가 아는 흥부전의 탄생 비화를, 이미 누구나가 깨닫고 있는 화합의 메시지와 함께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메시지를 담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디 많은 감독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그 결과 이토록 허무맹랑한 영화는 이제 그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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