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채 메시지만 둥둥.
이유영, 김희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나를 기억해>는 한마디로 연출 의도와 스토리가 완전히 어긋나 버린 느낌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굳이 그 청소년 범죄를 이런 식으로 그려내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게 하는 영화랄까..
영화는 고등학생 민아와 고등학교 교사 서린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채팅으로 만난 옆 학교 오빠와의 로맨스를 기대하던 민아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서린도 누군가에 의해 성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그 사실을 당당하게 신고하기를 꺼려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가해자의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서린은 그 누군지 모를 존재에 대해 괴로워하면서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협박하는 '마스터'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이미 두 캐릭터의 외모가 상당히 유사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영화는 머지않아 또래 학생들에게 윤간을 당한 민아가 서린으로 이름을 바꾸고 살아가고 있음을, 즉 오프닝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동일 인물임을 밝힌다. 14년 전 끔찍한 일을 겪은 서린이 자신의 과거를 아는 누군가에게 또다시 협박을 당하고 이때문에 점점 피폐해져 가는 과정, 그리고 과거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데 큰 기여를 한 전직 형사 국철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과연 범인이 누굴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두 인물 이유영과 김희원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데에 크게 한몫한다. 특히 실질적인 주인공인 서린을 연기한 이유영 배우의 경우 <간신>, <그놈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등 이전 작품들에서 저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의 연장선 상에서 이번 영화에서도 '그녀가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여기에 전개 과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캐릭터들은 연기한 오하늬, 이학주, 김다미, 이제연 배우의 활약 역시 인상적이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영화는 결국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극도의 찝찝함과 불쾌함을 선사한다. 그 이유를 한번 추측해보자면, 영화는 결국 엔딩크레딧에 삽입되는 신문 기사들을 통해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날로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의 위험성, 더불어 성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이러한 사회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뚜렷한 메시지만큼은 인상적으로 다가오나 문제는 결국 이 메시지가 극의 흐름에 전혀 녹아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마찬가지로 여성이 누군가에 의해 강간당한다는 설정이 삽입되어 있는 <윈드 리버>나 <쓰리 빌보드> 등의 영화처럼 묵직한 여운을 선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보인다. 극에서 묘사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피해자들이 적지 않을 사회에서 영화에서 그들이 강간 혹은 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은 불필요할 정도로 직접적이고 세세하다. 그러한 묘사가 없이도 충분히 사건의 심각성을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인지 몰라도 영화 전반적으로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그저 지나치게 불친절하고 예의 없게만 느껴진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썩 좋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는 개연성의 상실이 크게 작용하는 듯 보인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데 이때 펼쳐지는 일련의 반전들은 큰 충격을 선사하기보다는 그저 당황스럽고 뜬금없게만 느껴진다. 어떤 점에서는 결국 이 반전을 위해서 그동안 달려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대로 쌓아 올린 것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놀라게 하기에 급급하는 느낌이랄까.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는 바로 그 설정 때문이라도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멀리 해외까지 안 가더라도, 결국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 소재를 깊이 있게 다룬다면 <한공주>와 같은 수작이 될 것이고 그 소재가 영화의 메시지와 부합하지 못한 채 그저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면 이 영화처럼 불쾌함만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