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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메이커>

상실을 겪은 두 남녀가 서로를 보듬기까지.

by 뭅스타

이번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부터 괜스레 궁금하고 괜스레 기대되던 그 영화 <케이크메이커>를 관람했다. 전주에서 관람한 <폭스트롯>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 사라 애들러 배우가 주연을 맡기도 한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아주고 위로해가는 과정을 쓸쓸하면서도 매력적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초반부터 펼쳐지는 생각과 많이 다른 스토리 탓에 나쁘지 않은 당혹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베를린의 어느 케이크 가게에서 달콤한 휴식을 보내는 남자 오렌. 사랑하는 아내 아나트와 함께 살아가던 그는 케이크 가게의 파티셰 토마스와 은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렇게 부적절한 관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려는 찰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오렌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연인을 잃은 토마스는 남편을 잃은 아나트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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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사전 정보도 찾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제목만 보고 다양한 케이크와 함께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힐링 영화이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 달리 영화는 시작부터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펼쳐진다. 파티셰 토마스와 가게를 찾은 손님 오렌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초반부터 퀴어 영화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그들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선사하던 영화는 갑작스러운 오렌의 사망, 그리고 그의 연인인 토마스와 아내 아나트가 만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충격적인 스토리와 달리 시종일관 잔잔하고 담담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자칫 막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상황에도 불구 영화는 이들의 삼각관계를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으며 이 삼각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도 않는다. 영화가 중요하게 그리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위로를 받는 과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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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에 더욱 흥미를 불어넣는 설정은 낯선 이방인 토마스를 대하는 아나트와 주변 인물들의 태도에 있다. 극 중 토마스는 독일인이며 그가 사랑한 남자 오렌과 그의 아내 아나트,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은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아간다. 여전히 독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이 남아있는 이스라엘에서 토마스는 철저히 배척과 경계의 대상이 된다.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븐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나트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 토마스는 뛰어난 제빵실력으로 아나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엔 성공하지만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지는 못한다. 결국 영화는 단순히 상실을 겪은 두 남녀의 위로를 넘어 독일과 이스라엘이라는, 그 어떤 면에서도 확연히 다른 두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메시지까지 함께 담고 있는 듯 보인다.

극의 분위기가 무척 잔잔하기는 해도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맛있는 케이크가 먹고 싶어지는 일종의 푸드테라피 영화로써도 나름의 역할을 해내며, 베를린과 예루살렘이라는 전혀 다른 두 도시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상미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이끄는 두 배우 사라 애들러와 팀 칼코프의 안정적인 연기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특히 토마스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표현해낸 팀 칼코프 배우의 연기는 그의 차기작도 계속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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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역사적 문제, 종교의 차이, 성 정체성, 그리고 차마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삼각관계까지 복잡한 요소들로 얽혀있음에도 불구 두 남녀가 이러한 문제들을 초월하고 서로를 보듬아주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매력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많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에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금방 가시지 않는 여운까지 자아내는 영화이기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감정이 커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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