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의미로든 강렬한 오컬트 호러.
로튼토마토 지수 93%를 기록 중이며 욕 나올 정도로 무섭다는 홍보 문구로 큰 관심을 모았던 그 영화 <유전>을 관람하였다. 아마 최근 관람한, 혹은 몇 년간 관람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상영관을 나섰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영화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 다시는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 나쁘고 찝찝한데, 그 찝찝함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희한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마치 지난해 <겟 아웃>이 그러했듯, 관객이 앞으로의 스토리를 예측할 만한 최소한의 여유조차 주지 않는, 무척이나 강렬하고 독특한 작품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애니의 엄마이자 스티브의 장모, 피터와 찰리의 할머니인 엘렌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이후 어딘가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돌던 애니의 집은 영화의 핵심이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급격히 오싹한 기운을 더하게 되고, 애니가 위험을 자초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서 화목하지는 못할지라도 평온하게 흘러가던 집 안은 두려움과 공포의 장소가 되고 만다. 내용 설명이 무척이나 두리뭉실하지만 스포일러를 최소화한 채 관람하는 것이 좋은 영화일 것이라고 판단해 스토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할 수 없을 듯하다.
호러 장르로썬 꽤나 긴 편에 속하는 127분간의 러닝타임 중에서 대략 초반 50분까지는 '이게 공포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잔잔하게 흘러간다. 마치 추후에 오싹한 공포 영화를 기대한 누군가가 IPTV 등 다른 플랫폼을 통해 이 영화를 관람한다면 중간 지점에 재생을 종료하고 다른 영화를 찾아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체 후반부에 얼마나 제대로 몰아칠 작정이기에 이토록 차분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영화는 이 예열의 과정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후반부에 이르러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서서히 이동하는 줌 인-줌 아웃 등 감각적인 촬영과 영화 초반 스산한 기운을 자아내는 미니어처들을 인상적으로 구현해낸 미술, 그리고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음악까지. 스토리 외적인 요소들은 영화 내내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할 정도로 두드러진다. 이러한 각각의 요소들을 어우러지게 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연출은 이것이 그의 첫 장편이라는 사실이 안 믿길 정도로 놀라운 연출력을 선보인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애니를 연기한 토니 콜렛의 호연이다. 당장 지난주 관람한 <스탠바이, 웬디>의 스코티를 연기한 배우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선보인다. 아직 너무나도 이른 얘기지만 그녀가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도, 혹은 이름을 올려야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녀 이외에도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밀리 샤피로 등 가족 구성원 각각을 연기한 배우들은 그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감각적인 연출,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하는 분위기, 배우들의 호연 등 인상적인 포인트들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이제까지 쌓아오던 전반적인 영화의 느낌을 한순간에 뒤바꿀 정도로 당황스러웠던, 그렇기에 상영관 불이 켜지는 순간에도 자리를 뜰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결말이었달까나. 결국 영화의 호불호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도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며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이 신선함과 불쾌함, 혹은 그 사이 어딘가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감상이 충분히 이해될 듯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제대로 몰아치는 후반부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지만 이전까지의 과정은 심히 차분하며, 내내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결말의 신선함은 조금은 과하게까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생각나는 영화인 만큼 그 누구에게도 쉽게 추천할 수도, 마냥 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영화였다는 말과 함께. 아니, 그래서 이게 왜 15세 관람가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