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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작전>

실제 사건을 함부로 영화화하면 안 되는 이유.

by 뭅스타

<로보캅>의 호세 파딜라 감독이 연출을, 로자먼드 파이크와 다니엘 브륄이 주연을 맡은 신작 <엔테베 작전>을 관람하였다. 전주 국제영화제 초청 당시의 제목 <엔테베에서의 7일>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는 사족을 뒤로하면, 영화는 어쩌면 조금 더 긴박감 넘치게, 그리고 조금 더 메시지를 진중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 실화 소재를 무미건조하게만 다룬 느낌을 안겨준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혁명 분파 독일인과 팔레스타인 테러범에 의해 25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던 여객기가 피랍된 1976년 6월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의 석방을 빌미로 한 납치극이 벌어지자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범과 협상을 시도할 것인지, 군사를 대동해 침공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 대립이 발생한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비아를 거쳐 우간다 엔테베로 향한 납치범들과 승객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반응을 기다리며 엔테베에서 대기하고, 영화는 각기 다른 상황들을 수시로 교차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이 엔테베에 머문 7일간의 일들을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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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들이 여객기를 납치하고 승객들을 인질로 삼는 과정,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과정은 나름의 흥미를 자아내며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는 크게 두 명의 독일인을 중심으로 한 테러범들 간의 의견 대립, 총리와 국방장관을 주축으로 한 정부 내의 의견 대립을 교차하며 그려내고 있는데 이렇게 적대 상황에서 내부의 인물들끼리도 갈등을 빚는 점은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영화는 그 어떤 감흥도 선사하지 못한 심심하고 평범한 작품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아마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결정적으로 영화 자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엔테베 작전은 1948년 하나의 국가로 선포된 이스라엘을 영화에 등장하는 각 국가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런 만큼 어떤 한 국가의 신념에 치우쳐 있지 않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그려내는 것이 하나의 미덕으로 비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영화는 그 어떤 입장도 취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는 듯하다.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의 입장, 국민의 안전 귀환을 목표로 갈등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 그 사이에 놓인 우간다 대통령의 입장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내려고 애쓰다 보니 결국 중립적인 시각이 아닌, 그 어떤 시각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것이 옳은 것인지 미처 알지 못해 헤매는 듯한 인상만을 심어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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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해내기 위해 엔테베 공항에 급습한 이스라엘군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후반부 시퀀스는 자연스럽게 얼마나 긴장감 있게 묘사하였을지 기대하게 되는데, 영화는 결국 그 기대를 조금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결국 영화가 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온 것임을 감안했을 때 테러범들을 제거하고 인질들을 구출해내는 이 후반부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눈 깜빡할 사이에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만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가 <제로 다크 서티>나 <시카리오> 같은 수작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지점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긴박감을 자아내기는커녕 무용 시퀀스와의 교차 편집으로 몰입을 방해하기만 하는 클라이맥스는 무척 아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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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실화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작품이자, 작전 자체의 긴장감이나 몰입감을 자아내지 못한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일종의 군사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일 년에 두 세편씩은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영화가 여타 작품들에 비해 내세울 만한 장점이 무엇이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는, 그저 심드렁하게 다가온 107분간의 관람이었다고 할까. 배급사인 CJ가 왜 특별히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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