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만의 스타일로 가득 채운 한편의 우화.
<튼튼이의 모험>을 영화제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시사회로 미리 봤음에도 볼 영화가 넘쳐나는 금주의 개봉작 중 오늘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개들의 섬>을 관람하였다. 국내에서 다양성 영화로썬 이례적인 흥행을 거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판타스틱 Mr. 폭스> 이후 두 번째로 내놓은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는, 마냥 새롭다고는 할 수 없는 스토리를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넘치는 개성으로 표현해낸 한편의 매력적인 우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20년이 먼 미래, 가상의 도시 '메가사키'에 치명적인 개 독감 바이러스가 퍼지자 시장 고바야시가 개들을 이른바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쓰레기만 가득한 섬에서 렉스의 무리를 비롯한 모든 개들이 점점 병들고 쓰러져갈 때 시장의 양자 아타리가 자신의 경호견 스파츠를 찾으러 섬에 불시착한다. 낯선 인간의 등장에 경계하던 렉스 일행은 아타리를 도와 스파츠를 찾기 위해 나서고 그 시각 고바야시 시장은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개들을 모조리 말살시킬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
고바야시 가문의 과거사가 거대한 대서사시처럼 펼쳐지는 오프닝은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던 이 영화는, 그 초반 설정의 기시감을 잘 견뎌내고 나면 이후로는 무척 어둡고 암울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재기 발랄하게 다가온다. 렉스를 중심으로 보스, 킹, 듀크,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떠돌이 개 치프까지. 영화의 중심이 되는 다섯 마리의 개들과 자신의 경호견 스파츠를 찾아 나선 아타리가 펼쳐나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며 저절로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의 메시지 자체는 간단하다. 인간들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버려지고 학대받던 동물들이 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체적인 플롯은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의 <화이트 갓>을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 나아가 리부트된 <혹성탈출> 시리즈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쩌면 조금은 진부하게 느꺼질 수도 있는 스토리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웨스 앤더슨 특유의 스타일과 어우러져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대칭 구도에 집착하고 화면 중앙에 위치한 캐릭터들이 정면을 응시하는 등 이전 작품들에서부터 이어진 감독만의 집요한 영상미는 이 영화만의 개성을 더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된다.
브라이언 크랜스톤, 리브 슈라이버,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스칼렛 요한슨, 그레타 거윅 등등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화려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로 탄생한 캐릭터들은 영화의 매력을 더욱 높여준다. 여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게 되는 깨알 같은 유머 요소들이나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몇몇 장면들까지 더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만한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반려견과의 추억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각양각색의 개들이 떼로 등장하는 이 영화의 매력에서 더더욱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그릇된 탐욕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을 향한 비판적인 메시지도 돋보인다. 한편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연출은 비판적인 시선에서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감독 스스로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의 명장들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에서 일본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밝힌 바 있지만, 영화 전반의 스토리가 지극히 서양적인 분위기로 표현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라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이 짙게 스며들어 있는 영화의 분위기는 특히 국내 관객들 중에선 조금은 불편하게 느낄 이들이 많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배경적인 아쉬움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웨스 앤더슨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매력과 개성을 갖춘 이 작품을 애정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필모그래피에 한 작품 한 작품이 추가될수록 더더욱 그에 대한 신뢰 혹은 기대치를 높여주는 웨스 앤더슨의 차기작을 다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