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 행복의 기원 - 서은국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건강 등 몇 개의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창고에 이 행복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과 행복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연구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00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당첨자들에 대한 연구다. 복권 당첨 1년 뒤,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없었다...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 (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인간은 적응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마치 동전탐지기처럼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들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그러나 적응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조건들을 가지는 것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최근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여행 등 최근 즐거웠던 경험을 써보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평가하도록 하고, 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고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한국 대학생들은 자기 경험이 남들이 볼 때는 별게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여행이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다고 느꼈다. '나만 좋다고?' 왠지 뭔가 착각한 것 같아 뻘쭘해진다. 과도한 타인 의식에서 나오는 혼란이다.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 주관적 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이외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에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인간에게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우선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