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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Dec 05. 2020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

삶 #1. 행복의 기원 - 서은국

앞으로 쓰게 될 몇 개의 글에서

내가 인생에 대해 제기한 질문들과 그 잠정적인 결론들을 이곳에 기록하고자 한다.

나의 주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책 또는 경험, 친구들과의 대화가

이 기록의 주된 재료가 될 것이다.




<행복의 기원>은 내가 대여섯 번은 반복해서 읽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한,

말하자면 나의 인생책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냐고 물었을 때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대답한다. 그럼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하자, 행복하자 외치는 이 세상에 범람하는 수많은 행복지침서들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행복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이렇게 조언한다. 하나같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  저자인 서은국 교수는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가 아닌 우리는 '왜' 행복한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인간과 뇌의 본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반복해서 읽으며 이 책에서 내가 마음에 새긴 구절들이다.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건강 등 몇 개의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창고에 이 행복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한다. 인생의 중요한 나머지 것들을 등한시한 채. 어느 곳에 사느냐,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느냐, 어떤 가방을 들고 다니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그렇다. 어느 정도까지는.


만약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서의 행복의 의미를 소극적 행복, 즉 불행(가난)의 상대적 부재라고 한다면, 맞다.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불행할 확률이 높다. 내가 치킨을 시켜먹고 싶어. 근데 돈이 없어. 좀 더 심각한 상황으로, 가족이 아파. 근데 돈이 없어. 그럼 대체로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 경제적 안정성은 행복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의 행복이 적극적인 행복을 의미한다면 어떨까? '돈은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이 없지 않은 것은 행복에 중요하지만,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른 어떤 물질적인 조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행복의 기원에서 얻은 행복에 대한 첫 번째 결론이다. 돈이나 물질적인 조건은 나의 결핍과 불편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나를 결정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돈과 행복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연구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00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당첨자들에 대한 연구다. 복권 당첨 1년 뒤,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없었다...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 (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인간은 적응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시험 합격, 대학교 입학, 로또 당첨 등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이 잘 풀리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부모님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 대학교 가면 남친, 여친 생긴다. 다 해결된다. 대학교 가서 즐겨라. 실제로 그렇던가? 입시에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은 한순간이다. 그다음엔, 인생은 계속된다. 학점 따느라, 취준하랴 할게 산더미다. 어떤 쾌락도 고통도 잦아들고 원래의 그 무덤덤한 기분으로 돌아온다. 왜냐면,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마치 동전탐지기처럼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의 기원의 논리의 시작은 이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보다 우리가 왜 행복한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 행복과 고통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어떤 원시인이 사냥에 성공해서 고기를 먹었다고 하자. 고기를 먹음으로써 느낀 쾌락이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면? 원시인은 다시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고, 굶어 죽을 것이다. 따라서 이 원시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음으로써 느낀 쾌락이 초기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사냥에 나서지 않겠는가. 아무리 강한 쾌락도 금세 사라진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들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그러나 적응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조건들을 가지는 것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따라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행복(대학 합격, 고시 합격, 취직, 로또 등등)을 얻기 위해서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현재의 행복을 유예해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소소한 행복들을, 자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엔 집 주변이나 학교를 하늘을 보며 산책한다든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린다든가, 오후에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스라떼를 마신다든가, 하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소한 경험들이다. 언제라도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이다.

이것이 행복의 기원을 읽으며 내린 두 번째 결론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며, 소소한 행복들을 자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최근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여행 등 최근 즐거웠던 경험을 써보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평가하도록 하고, 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고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한국 대학생들은 자기 경험이 남들이 볼 때는 별게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여행이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다고 느꼈다. '나만 좋다고?' 왠지 뭔가 착각한 것 같아 뻘쭘해진다. 과도한 타인 의식에서 나오는 혼란이다.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 주관적 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이외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에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비교는 행복의 적이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나의 행복과 만족을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행복의 기원을 통해 얻은 세 번째 결론이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와 수직적 가치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는 법에 대한 내용은 <개인주의자 선언>에 대한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상세히 써보고 싶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인간에게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마치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우선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사람 역시 음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획득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은 사람이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느냐, 그리고 그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나의 행복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행복의 기원에서 얻은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은 연인, 가족, 친구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두 번째 결론과 같이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내 곁에 많이 두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이것이 내가 행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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