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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동 Dec 05. 2020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삶 #0.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는 법.

나는 왜 사는가? 좋은 삶은 무엇인가?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거가 없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나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가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생각해보라. 참 편한 인생이 아닌가?

성경, 불경, 코란에 쓰인 대로 착하게 살면 보답을 받고, 내세가 있어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신이 너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있고, 성경 등에 쓰인 대로 살면 된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유신론자의 삶은 단순하고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난 내세를 믿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다. 

죽으면 끝이고, 그냥 그대로 끝,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내가, 나아가 인간이 아닌 것을 안다. 세상에 진리가 없음도 안다.

나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고, 우주든, 나든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안다.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미워하는 것, 전부 다,

딱 백 년만 지나면 모두 사라질 것을 안다. 

죽고 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수십억 년의 우주의 역사 속에서, 나는 먼지만도 못하다.

어떤 면에서는 삶은 허무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때가 누구나 있다.

어쩌면 그게 사람들이 유아기, 사춘기 등으로 부르는 시절일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세상이 내 것이 아니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음을 깨달으며 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또는 우주에는 신도 진리도 없다는

그 허무 다음에 무엇이 와야 올바른가?


나는 좋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이야기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없고, 목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목적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 한해서는.

내 인생이 단 한번뿐이라면, 허무함에 절망하며 무미건조하고 우울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로 내 삶을 다채롭게 채우면 된다.


그렇다면 삶을 채울 수 있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세상과 인간의 관계는 객관적이지 않다. 인간이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규정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내가 어떤 현상을 마주했을 때,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내 삶이, 내가 누구인지가 결정된다.

연인과의 이별을 마주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발목을 꺾어놓는 비극일 수 있다.

그 상처로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이별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밑거름일 수 있다.

그저 그러려니, 다 지나가려니 생각하고 툴툴 털어낼 수도 있다.

우리의 경험과 느낌,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전부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경험이라도 한 인간의 너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그 경험에 대한 주관적 해석만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은 이야기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내 삶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나만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나만이 나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로써.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로부터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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