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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27. 2020

말 것: '어차피 대략 그럴 것이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57일 차

스스로 정하기로, 문장의 몰입감을 빼앗는 말이 있다. 이 단어들은 글로 옮겨도 딱히 득이 될 게 없으며, 머릿속에 떠올리면 생각이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어차피' '대략' '그럴 것이다'다. 의도치 않았으나 세 개를 이어붙이면 체념하는 듯한 말이 된다. '어차피 대략 그럴 것이다.' 내게는 이 말이 밀도 있는 글쓰기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먼저 어차피는 결과를 제멋대로 단정짓는 말이다. 자칫 논리의 비약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런 단어를 자주 쓰지 않는다고 안심할 게 아니다. 문장을 생각하고 이어붙일 때 머릿속에 수많은 '어차피'가 지나간다. 더 조사하고, 더 되돌아보고, 더 구체적으로 쓸 수 있음에도 자신과 적당히 타협해서 고른 문장들 말이다. 이러한 문장들은 고치기 전까지 독소로 남는다.


대략은 주관적으로 쓴 글임을 드러낸다. 독자는 필자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그 존재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때 집중한다. 대략은 그 반대다. 필자를 드러내면서도 대략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역시 어차피와 비슷한 경우다. 살면서 강하게 확신했으나 철저히 빗나간 예상이 많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터기에게 졌을 때도 그러했고, 당연히 합격일 줄 알았던 대학 입학 대기 번호가 내 앞에서 끊겼을 때도 그러했으며, 이제는 못볼 줄 알았던 사람을 매일같이 보게 됐을 때도 그러했다. 완벽히 들어맞는 추측이란 없다. 그럴 것이다라고 적을 수 있는 기회는 누가봐도 납득할만한 원인을 배치했을 때 주어진다.


정리하면, 세 단어의 공통점은 타성을 이기지 못한 채 섣불리 추측한다는 것. 마땅히 몸이 움직여야할 대목에서 머리가 먼저 움직여버린 경우다. 그렇다고 무조건 세 단어를 결코 쓰지 않겠다며 객기를 부리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생각을 경계하며 쓸 때 문장을 한층 벼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의식하지 않아도 '어차피 대략 그럴 것이다'가 '이 경우엔 예외없이 그렇다'로 바뀌게끔 명징하게 생각하며, 또렷하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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