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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28. 2020

할 것: 남의 글 고쳐보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58일 차

바둑이든 체스든 훈수는 금기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방해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겠지만, 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판세를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는 꼭 훈수를 두는 사람의 실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3인칭 시점으로 바라봐야만 나타나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숲 안에서는 숲을 볼 수 없듯이, 내가 깔아놓은 판에만 몰입하다 보면 승리로 향하는 흐름을 잃기 십상이다.


글쓰기로 치면 '훈수'는 남의 글을 고쳐주는 작업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한한 훈수가 필력을 기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TV, 유튜브를 비롯해 수많은 강연을 하고, 책도 여럿 쓴 사람일지라도 정작 기고 글을 받아 보면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바쁜 와중에도 직접 글을 써서 보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솔직히 말해서 글을 받아 다듬는 입장에서는 언제까지고 감사할 겨를이 없다.


기본적으로 매체에 글이 실린다는 건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원고를 다듬어야 하고, 필자가 포기할 수 없는 표현은 무엇인지, 평소 자신의 글에 손을 대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은 아닌지 등 고려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윤고할 때는 과감히 다듬어야만 한다. 


물론 언제나 막막한 글이 오는 건 아니다. 성의를 눌러 담은 글에 감동하거나,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의 깨달음을 전하는 글을 받아 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글을 싣고,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는 기고가 애틋한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금껏 1000여 편의 글을 바룬 뒤 내린 결론 하나. 결국 남의 글에서 인지한 개선점이 내 글에 적용된다는 것. 나는 글을 쓰다가 종종 '이 표현은 내가 고쳤던 적이 있는데' 싶은 대목이 나온다. 쉽게 말해 지금껏 남의 글을 고쳐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 글에서 고칠 부분이 속속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넓은 의미에서 협업이 아닐까. 지금 이 문장 빚으면서도 무수한 남의 흔적이 엮여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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