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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29. 2020

할 것: 뼈와 살이 되는 남의 말

어제보다 잘 쓰는 법_59일 차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쓰는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전자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데 돈까지 받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돈을 받으니 내키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업에 호불호를 가리는 게 철부지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거짓 없는 심정이 그렇다.


"jd 씨는 좋아하는 소재를 쓸 때와 그렇지 않은 소재를 쓸 때가 서로 차이가 큰 것 같네." 지금껏 족히 10만 편은 넘게 글을 고쳐오셨을 교열 선배로부터 이 말을 듣고 충격이 일었다. 그러한 나의 성향을 알 길이 없었거니와, 글만 보고 글감에 대한 필자의 선호를 읽어 내는 능력이 놀라웠다. 흥미 같은 뜨뜻미지근한 감정은 여러 번 글을 다듬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는데.


이 충격의 근원을 거슬러 가 봤다. 결국 '나의 글은 내가 잘 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기 세계를 갖고 있고, 글쓰기는 그 세계를 짓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내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는 없다. 의지력을 발휘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할 뿐. 달마다 내가 쓴 글을 5명이서 돌려본다. 돌이켜 보면, 나름 포인트를 준답시고 쓴 대목이 예상을 빗나가고, 엉뚱한 문장에서 호평을 듣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경험을 거듭하고 나니, 나는 내 글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스로 쓴 글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못하든 애착일 뿐이다. 평가는 독자 각자의 몫이다. 같은 맥락에서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면 용기를 내 남에게 글을 뵈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반대로 가타부타 평가를 원치 않는다면 마음껏 쓸 일이다. 

 

그런데 꼭 글뿐일까? 내가 몰랐던 나의 실체가 주변인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로 드러나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반 년 전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배가 나왔네"라는 말을 들었다. 마침 운동을 그만뒀을 당시였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으나 외출할 때 옷이 점점 얇아지는 계절이 오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글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글에 대해 남의 평가가 나의 평가보다 정확하다는 믿음은 절로 필자를 겸손하게 만든다. 물론 가끔 납득이 되지 않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실보다는 득이 크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글을 모른다. 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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