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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09. 2020

할 것: 집단의 언어를 포착한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70일 차

글은 그 자체로 필자가 남긴 흔적이다. 따라서 특정 집단이 쓰는 말의 스타일을 파헤쳐 보면 그 집단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언어다. 모든 기업은 효율성을 따진다. 그들이 쓰는 글에서도 마찬가지. 아래 내용은 실제로 포털 뉴스에 난 보도자료 중 몇 문장을 가져온 것이다.


J사는 업계 최초로 ‘글로벌 CSR 펀딩’을 통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 '적도원칙'에 가입한 E사는 사전에 적도원칙 가입 요건 분석, 세부 개선 과제 도출, 전산 시스템 개발 등의 과정을 거쳤다.

G사는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보상, 배치 등을 위해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인재 육성, 경력 관리 등 체계적인 연계 시스템까지 심사 지표에 포함했다.


이렇듯 명사를 나열하는 식의 표현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우리말 어법에 비춰보면 어색하더라도 글자 수를 줄이면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말이 뚝뚝 잘려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꽤 오랜 세월 밴 습성이어서 이제는 익숙한 독자가 더 많을.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명사를 나열하는 형태보다는, 부사가 동사를 꾸며주는 형태로 쓰는 게 더 우리말다운 문장이다. 이 원칙을 적용해 위 예문 중 두 번째 문장을 고쳐보자.

 

E사는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취지에서 '적도원칙'에 가입했다. 이를 위해 사전에 가입 요건을 분석하고, 상세한 개선 과제를 도출했으며, 적도원칙과 관련한 전산 시스템 개발하는 과정을 거친 바 있다.


글자 수는 늘었지만 독자가 의미를 파악하는 수고를 더 덜어준, 쉽게 말해 '친절한 문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또 소리 내 읽어보면 훨씬 술술 읽힌다. 비교적 우리말다운 문장이 된 것이다.


기업, 예술, 기술,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제각각인 말과 글로 떠도는 언어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다듬는 일. 사보 기자로서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집단의 언어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글을 쓸 때 초점이 저절로 독자에게 맞춰지게끔 만든다. 그러면 스스로 더 친절한 글을 쓰도록 독려할 수 있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매번 도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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