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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08. 2020

할 것: 배워야 쓰는 게 아니고, 쓰면서 배우는 것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9일 차

우주와 심해. 듣기만 해도 내 지식수준을 하찮게 만들 것 같은 두 단어다. 동시에 은근히 흥미를 보이는 독자가 많은 소재이기도 하다. 두 공간을 비교하는 인포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흔히 우주가 더 닿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심해도 못지않다. 지구 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인간이 도달한 영역은 고작 5% 정도라고. 그중 심해는 달보다 가기 어려운 지구인 셈이다.


내용을 꾸리면서 새롭게 알게 된 몇몇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가령 현재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것으로 추정하는 어류는 수심 8000m 지점에서 무인 카메라에 찍힌 꼼칫과 어류라는 사실, 2018년 1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닿은 탐사선은 중국의 '창어 4호'라는 사실, 빛과 온기가 없는 환경에서 생존 가능한 심해어가 우주 생명체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이다.


주목할 점은 정보를 수집하고, 편집하고,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보를 흡수하는 능률이 높았다는 점. 만약 내가 시험공부를 하듯 우주와 심해를 공부했다면 그 기억은 채 6시간도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흐름과 짜임새를 갖춘 글이 된 지식은 몇 달씩 머릿속에 남았다. 기사가 인쇄되고 한참이 지나서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먼저 심해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었으니까.


나는 글쓰기가 배움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알면서도 이 점을 쉬이 간과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조직문화'나 '디커플링 전략' 같은, 기업 사례를 중심으로 한 기사를 쓸 때다. 자료 조사에 들이는 시간이 길어질 법한 소재다. 방대한 글의 분량은 방대한 정보를 의미하는데, 그 배움의 양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일 터다. 그럼에도 성실히 글밥을 먹는 노동자인 나는 매번 꿋꿋이 써낸다.


불교에서는 고대부터 '사경'이라는 수행이 있었다. 경문을 베껴쓰는 수행이다. 그것이 부처의 제자를 자처하는 수행자들이 심오한 지혜에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들에게 '초서', 즉 중요한 대목을 추려 필사하는 공부법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조정래 작가가 며느리에게 자신의 작품 <태백산맥>을 필사하도록 한 일화는 유명하다. 꼭 배운 바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단지 '쓴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능력을 확장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다.


오늘도 나는 쓰기의 효과를 확신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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