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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10. 2020

할 것: 글의 밀도는 집념에 비례한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71일 차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 중 내가 마음에 새긴 한 문장이다. 인터넷 뉴스 댓글만 봐도 혐오 표현이 들끓는 세상에서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독자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 방법을 오래도록 고민한 결실이 마침내 기획으로 맺어졌다. 나라별 인사말이나 속담 중 환대의 의미가 담긴 말을 소개하는 아이템이다. 대표적인 예가 '나마스떼'다. 이는 '내가 섬기는 신이 당신이 섬기는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의미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아는 말 외에도 생소한 말을 함께 소개하고자 했다. 그것이 한병철이 말한 진짜 '문명화'의 의미를 되새겨볼 기회를 제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곧장 사례를 수집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게오게오게오 수밤아추사르 바자탐'이었다. 군 시절 광고인의 인터뷰집인 《모두가 그녀를 따라한다》에서 읽은 문장이다. 의미와 발음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외고 다녔다. 티베트 승려들이 자주 하는 말로, '세상 모든 것이 오늘도 행복을 찾아가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의 표기를 찾기 위해 나는 어느 티베트사원 스님, 불교학술원 대표 강사님과 메일, 통화를 주고받았다.


그런가 하면 H대학교 아프리카 연구소 교수님과 메일을 주고받다가 아프리카에 20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함하기도 했다. 이분 덕분에 '무투 은디 무투 응가 반웨'(인간은 다른 인간과 연관돼 있기에 인간이다)라는 말의 표기와 정확한 의미를 건질 수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심지어 일요일 새벽 2시 28분에, 성의를 담은 답장을 보내주신 Y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나름 데이터를 축적해봤으나 여전히 2페이지를 꾸리기에는 부족했다. 일단 생각보다 나라별 속담을 밀도 있게 정리해놓은 자료가 흔치 않았다. 기사나 블로그 콘텐츠는 부실했고, 논문은 고리타분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내용이었다. 급기야 모니터로 접하는 정보에 한계를 느끼자 책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나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에서 발간한 《다문화 속담 여행》이라는 책에 주목했다. 2011년에 발행한 이 책은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발행처인 유네스코 관계 부서에 연락해도 "대여나 구매는 안 됩니다"라는 말이 돌아올 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을 찾은 건 일산에 소재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였다. 문을 닫기 10분 전에 간신히 이 책을 발견했다. 당시 감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중간쯤을 훑어보다가 마침내 '아소하 아스가'라는 몽골 속담을 건졌다. '손님에게 밥을 먹었는지 묻느니 음식을 쏟아버리는 게 낫다'는 의미다. 그만큼 몽골인에게는 손님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는 게 당연지사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꾸린 지면은 스스로 흡족했다.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4개의 속담이 긴밀하게 부연하는 형태를 갖췄다. 의도한 그대로였다. 또다시 글의 밀도가 집념에 비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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