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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04. 2020

할 것: 자극 채집하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5일  차

마땅히 다음 문장을 쭉쭉 치고 나가야 함에도 생각이 꽉 막혀버릴 때가 있다. 사실 매달 마감 기한이 임박했을 시기마다 겪는 일이다. 넋 놓고 앉아있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언제까지고 멈춰있을 수는 없다. 글밥 먹는 노동자로서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뇌가 돌아가지 않을 때 자극을 채집하면 더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내가 채집한 자극은 이렇다. 오감을 자극하는 정도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눴다.


소자극: 옥상에서 찬바람 맞기, 지난 필기 살펴보기, 지출 결의서 쓰기, 피카추 배구, 녹취록 다시 듣기, 맥심 믹스커피 1잔(물 양은 80ml).


중자극: 야근에 대비한 저녁 식사, 엽기떡볶이 먹기(교열을 보는 날에 팀원들과 함께 꼭 시켜 먹는 음식이다), 지인과 통화하기.


대자극: 주변인에게 글을 뵈고 피드백 받기, 잠자기.


빈도수를 따져보면. 나는 마감 때마다 대략 3번 정도의 대자극과 5번 정도의 중자극과 수십번의 소자극의 필요한 듯하다. 단, 소자극은 쌓이면 제법 중자극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만, 중자극은 아무리 거듭해도 대자극만한 강도를 내지 못한다. 즉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거나, 잠들어 버린 뒤 내일 다시 본다는 이야기도 된다.


단순히 일시적으로 활력을 불러일으키자는 차원이 아니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산소를 공급하자는 휘발성 짙은 솔루션과는 다르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취할 수 있는 자극을 '채집'한다는 생각으로 불러 모으다 보면 그것을 연료 삼아 원고의 진도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마치 택시 요금 계산기의 말이 멈출 듯할 때 액셀을 밟으면 다시 속도를 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랄까? 그렇게 자극을 공급하다 보면 결국 목적지 즉 완성에 닿을 수 있을 터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봤다. 주인공 안은영(정유미 분)은 원혼이나 감정, 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눈에 젤리 형태로 보이는 그것들을 도구를 사용해 채집하거나 물리친다. 그 모습에서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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