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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03. 2020

말 것: 공들인 문장이 돋보일 거라는 착각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4일 차

손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은 모든 것은 소중하게 마련이다. 마음이 동해서 만든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공들여 쓴 문장에 자연스럽게 애착이 담기는 이유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입장이다. 독자는 필자가 어떤 문장을 좋아하며, 어디에 힘을 줬는지 잘 알지 못하거니와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2년 여가 걸렸다. 사보 기자가 된 직후 나는 조금 생경하더라도 정확한 단어를 짜 맞춰 '나에게' 한껏 와 닿는 문장을 썼다. 당연히 나와 같을 거라 생각한 독자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오히려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백하건대, 초반에는 문장을 보는 독자의 안목, 어휘력, 감성을 얕잡아보기도 했다. 어떻게 이처럼 매력적인 문장을 대수롭잖게 넘기며 읽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누군가에게 뵌 글은 소통하는 기능을 하는 것일 텐데,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글을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자에게 친절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자 문체에도 변화가 일었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으나 부러 이유를 하나 꼽자면, 계속 반려되는 원고를 수정하기에 지친 '덕분'이다.


그중 잊힐 수 없는 원고는 어느 통신사 직원을 인터뷰한 칼럼이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뒤 진로를 틀어 미디어 분야로 석·박사 학위를 딴 그는 10년이 훌쩍 지나서 다시 금속공예를 취미로 시작했다. 학부생 때 만들어둔 작품을 꺼내 보다가 다시 작품 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나는 금속이라는 물성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계적 요소, 균형 같은 요소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예술을 하는 인터뷰이에게 학자의 면모를 덧씌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둔 얼개를 글로 옮기자 나만 알아보는 글이 됐다. 표현력의 한계도 톡톡히 경험했다. 이 원고는 족히 7번 넘게 수정한 끝에 가까스로 게재했다. 내게는 잊힐 수 없는 칼럼이다.


이후로도 수정을 거듭한 원고를 많이 썼다. 하여 나는 독자에게 친절한 글을 쓴다는 원칙을 몸으로 배웠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이제 안다. 문장에 공을 들인 대가는 특정 문장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란 사실을. 글 전체에서 풍기는 몰입감과 명확함으로 독자를 압도하며 은연중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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