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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18. 2020

할 것: 전지적 보이스피싱 시점

어제보다 잘 쓰는 법_79일 차

불과 며칠 전 일이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다급히 물으셨다. "너 괜찮냐?"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을 당한 뻔 한 것. 상황을 들어보니 아버지 스마트폰에 내 이름으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왔다고. 분명히 폰 화면에 뜬 발신자명은 내 이름이었고, 아버지는 한 치 의심 없이 받으셨을 터다.


내가 진짜 놀라웠던 건 보이스피싱범의 연기와 상황 설계 능력이다. 통화 속에서 나는 교통사고를 냈는데 하필 사채업자의 차를 들이받은 상황이었다. 이후 흠씬 두들겨 맞아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채업자에게는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는 '전화를 절대 끊지 말고' 돈을 어서 붙여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다.


내 연락처를 해킹한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에게 내 번호로 전화를 건 기술도 놀랍지만, 그의 설계력 또한 인정할만한 대목이다. 사기 기술이 이렇게나 고도화됐다.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과정을 부러 자세히 남긴다. (참고기사:보이스피싱의 시작 ‘전화번호 변작’... 해킹 통해 업그레이드)


보이스피싱범은 나의 부모님 연락처는 알고, 내 목소리는 알지 못했다. 따라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더라도 나를 흉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목소리를 가리면서도, 아버지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도록 다급한 상황을 설정했다. 이런 사기꾼들이 남을 등치는 일 말고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역시 생계가 걸리면 치열해지게 마련인가!


그를 보고 나는 글을 쓰는 태도를 떠올렸다. 쓰려는 영역이 보유한 정보보다 크다면 부족한 부분을 메꿀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자료를 조사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보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내 글을 쓰려면 결국 정보를 흡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가진 만큼만   있다. 대신 가진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나아가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끌어올  있다. 나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보이스피싱범이 치밀한 설계력을 발휘한 것처럼. 그러려면 일단 지금 내게 부족한 정보가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감정, 상상, 숫자, 외형 묘사  여러 형태가   있다.


반면에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글에 엉뚱한 부분을 덧대서 균형을 잃는가 하면, 수정할수록 논지를 흐리는 악순환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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