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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19. 2020

할 것: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태도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0일 차

솔직함은 본래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서 더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것을 밝힐 때는 아주 내밀한 구석이 아니라면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보통일 테니. 반면 싫어하는 것을 밝히는 태도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내가 너무 까칠해 보이진 않을까?' '예의가 없다고 느끼진 않을까?' 같은 걱정을 동반하면서.


글을 쓸수록 호불호 중 '불호'가 명확해지는 느낌이 든다. 최근 내가 포착한 불호는 '목표'다. 이제 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온다. 나는 올해 파이썬으로 업무에 쓸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차를 바꿨으며, 12번째 2020년 호를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다. 2020년을 시작하며 결심한 것 중 적지 않은 것을 이뤘고, 또 적지 않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과정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느껴졌다. 연초에 짠 리스트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탓에 철 지난 욕망을 이뤄가는 느낌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여름을 지나며 몸이 지쳤을 때 목표가 강박으로 다가온 시점이 닥쳤다. 그쯤부터 페이스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지우고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매일 조금씩 반복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한 것이다. 도중에 목표가 아닌 작은 습관을 만들라고 조언한 《더 시스템》과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고 도움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1000자씩 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토요일마다 30부가량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다. 굳이 자세히 밝히진 않겠지만, 아직 못 이룬 영역과 관련해 나름대로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려는 몸부림이다. 싫은 걸 싫다고 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껏 목표에 갇혀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자신을 자책하며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의 불호는 '트로트'다. 내가 트로트를 싫어하는 건 순전히 방송사 때문이다. 요즘처럼 TV 채널에 트로트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던 때가 있었나 싶다. 게다가 하나같이 오디션 혹은 경연을 바탕으로 하는 구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진부하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씨티팝이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생된다면 나는 씨티팝도 싫어하게 될 것이다.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 편임에도, 주말마다 거실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트로트 곡은 정이 뚝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태도는 환경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사실 고마운 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우리 엄마를 많이 웃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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