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잘 쓰는 법_81일 차
1년에 2번 정도 제주도로 취재를 갈 일이 있다. 작년에만 해도 요즘처럼 공항을 가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는데. 만나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고, 만나야만 담을 수 있는 장면이 있으니 취재원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가야만 한다. 사실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여행을 온 것 같은 설렘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 발걸음은 밥벌이를 하러 가는 여정임을 미리 밝혀둔다. 심지어 어떤 날은 제주도까지 가서 6000원짜리 비빔국수를 한 끼만 먹고 온 것에 대해 팀원들이 놀라워한 적도 있다.
굳이 밝히자면 에너지의 원천은 '여기까지 왔는데 취재를 망쳐서는 안 된다. 최대한 밀도 있게 진행해야야 한다'는 다급함일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여기까지 왔는데'다. 발걸음을 옮긴 만큼 집념이 생기고, 기사는 충실해진다.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제주도에 있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비교적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자주 나왔다. 나는 이것이 발품의 효과라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칼럼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를 모으며 부러 교보문고 광화문점까지 걸어간다. 사무실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다. 워낙 가는 길을 좋아하는 데다 서울의 중심임에도 서울과 동떨어져 보이는 면면을 볼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예컨대 청계천에서 옴실거리는 물고기를 볼 수도 있고, 통유리로 치장한 빌딩 숲 가운데 내 눈에는 오히려 더 인상 깊은 낡은 외관의 건물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독일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파편을 구경할 수도 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 마지막에 사진을 덧붙인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발품을 충전하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금방 다녀올 때보다, 왕복 3.6km의 거리를 걸은 날에 더욱 기획과 밀접한 서적을 찾게 됐다. 이제는 서점에 갈 때 아예 버스 탈 생각을 접어 둔다. 한때는 글을 쓰기 위해 걸은 걸음을 산출하면 글의 밀도를 수치로 가늠하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상상도 해봤다.
이리하여 나는 걸을수록 알찬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미신이나 징크스가 아니다. 통계상 지금껏 예외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 스스로 밝히지 못한 인과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