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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0. 2020

할 것: 발품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1일 차

1년에 2번 정도 제주도로 취재를 갈 일이 있다. 작년에만 해도 요즘처럼 공항을 가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는데. 만나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고, 만나야만 담을 수 있는 장면이 있으니 취재원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가야만 한다. 사실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것만으로 피로감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여행을 온 것 같은 설렘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 발걸음은 밥벌이를 하러 가는 여정임을 미리 밝혀둔다. 심지어 어떤 날은 제주도까지 가서 6000원짜리 비빔국수를 한 끼만 먹고 온 것에 대해 팀원들이 놀라워한 적도 있다.


굳이 밝히자면 에너지의 원천은 '여기까지 왔는데 취재를 망쳐서는 안 된다. 최대한 밀도 있게 진행해야야 한다'는 다급함일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여기까지 왔는데'다. 발걸음을 옮긴 만큼 집념이 생기고, 기사는 충실해진다.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제주도에 있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비교적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자주 나왔다. 나는 이것이 발품의 효과라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칼럼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를 모으며 부러 교보문고 광화문점까지 걸어간다. 사무실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다. 워낙 가는 길을 좋아하는 데다 서울의 중심임에도 서울과 동떨어져 보이는 면면을 볼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예컨대 청계천에서 옴실거리는 물고기를 볼 수도 있고, 통유리로 치장한 빌딩 숲 가운데 내 눈에는 오히려 더 인상 깊은 낡은 외관의 건물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독일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파편을 구경할 수도 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 마지막에 사진을 덧붙인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발품을 충전하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금방 다녀올 때보다, 왕복 3.6km의 거리를 걸은 날에 더욱 기획과 밀접한 서적을 찾게 됐다. 이제는 서점에 갈 때 아예 버스 탈 생각을 접어 둔다. 한때는 글을 쓰기 위해 걸은 걸음을 산출하면 글의 밀도를 수치로 가늠하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상상도 해봤다.


이리하여 나는 걸을수록 알찬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미신이나 징크스가 아니다. 통계상 지금껏 예외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 스스로 밝히지 못한 인과가 있을 뿐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 파편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보면 사람 키의 2배 정도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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