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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1. 2020

말 것: 글쓰기는 포장 기술이 아닌 관찰 기술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2일 차

지난겨울, 북클럽을 운영하는 어느 통신사 직원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동호회 명 하나 없이 북클럽의 이름이 '북클럽'인 게 눈에 띄었다. 이유인즉 거추장스러운 의미를 붙이면 누군가는 가입에 부담을 느꼈을 테고, 아울러 모임의 의미를 계속해서 되새기게 될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언제까지고 '북클럽'으로 불리며 최대한 편안히 직장인들이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5년간 꾸준히 활동을 지속한 것을 보면 그의 운영 방향이 효과가 있다고 할만하다.


생업을 병행하며 다른 일을 한다는 건 확실히 2인분의 생활이었다. 주말마다 파주의 한 24시간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북클럽에서 다룰 책을 읽는가 하면,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는 자리인 만큼 여러 목소리를 듣고, 정리하고, 공유해야 했다. 그중 꼭 한 번씩 '영업' '연애' 같은 잿밥에 관심을 둔 사람이 나타나는데, 이런 불순분자들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모임에서 빠지게 된다고.


나는 다독가의 말을 옮기는 인터뷰인 만큼 마땅히 문장에 인사이트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화근이었다. 충분히 그의 말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사' '내러티브' 같은 번지르르한 말을 끌어다 썼다. 결과적으로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 후에야 글을 게재할 수 있었다.


그쯤부터 글쓰기는 포장 기술이 아닌 관찰 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풀리려는 의욕은 관찰에 필요한 섬세함을 틀어막는다. 소재의 알맹이를 부풀리려면 글이 아닌 영상이나 이미지를 택하는 편이 낫다. 글에서는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게 아닌 이상,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십상이다. 겪어본 바로 독자 대부분은 눈썰미가 좋다.


자랑을 조금 보태자면, 가끔 인터뷰이로부터 "제가 하려던 말을 어쩜 이렇게 잘 써주셨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인터뷰이 당신에게 공을 돌리고 싶어진다. 당신의 이야기가 훌륭했기 때문에 그런 글이 나온 것이라고. 나는 유심히 관찰했을 뿐이다.


반면 과장하는 글은 반드시 티가 난다. 내 경우엔 감정이 잔뜩 들어간 단어로, 의도가 뻔히 보이는 문체로, 부담스러운 표현으로 나타난다. 주로 고칠 구석이 한가득한 원고에서 그렇다. 이런 불순물을 걸러주는 것은 역시 원점, 즉 소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관찰을 다짐하며 한층 뜯어보는 것이다. 결국 톺아보고 확인한 만큼만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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