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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4. 2020

할 것: 소재를 건지는 감각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5일 차

브이로그 영상을 보다 보면 가끔 크리에이터가 "썸네일 나왔다"고 반갑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군 시절, 나는 훈련소에서부터 500편이 넘는 일기를 쓰면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감정을 자극받는 일이 생길 때마다 '글로 옮겨야지'라고 다짐하고는 했다. 동화 속에서 나무꾼이 실한 나무를 발견하면 반드시 치는 대사가 있다. "오늘은 이놈으로 해야겠군."


세 장면 속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꾸준히 지속하는 활동이 있다는 것. 나아가 그것이 일상 속 경험을 골라서 엮는 장치가 됐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일 글을 쓰는 리듬이 자리를 잡으면 일상에서 '이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이 감각을 느끼는 일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바로 꾸준한 글쓰기를 가능케 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부단히 쓰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재를 건지는 감각이란 결국 지속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쓸수록 쓸만한 소재가 보인다는 말이 어찌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당연해서 쉬이 잊고 마는 사실이기도 하다. 스스로 다그치는 마음에서 다시 새겨본다.


그런데 '이거다!' 싶은 소재가 막상 글로 옮기니 시원찮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있어 보이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을 구분하고자 한다. 전자가 꼭 허세를 뜻하는 건 아니다. 기사를 쓰며 정해진 형식을 따르려면 의도적으로 전자에 비중을 둬야하는 경우도 많다.


후자는 액체 괴물 같다. '고정적이지 않고' 어쩔 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의미가 모호하다. 게다가 구체적인 생각을 덧대어 '가까스로 형태를 갖춰놨는데', 어느 순간 '변색'돼버려 하고 싶은 말이 아니게 돼버리는 경우도 있다. 별수없이 또 다른 소재를 캐봐야 하는 시점이다.


나는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어야 글이 빚어진다. 거의 매번 그렇다. 하여 적당히 태평하고 즐겁게 글을 쓰고 싶었던 희망은 깨진지 오래다. 글쓰기는 투쟁과 닮은 성질을 가진 활동임을, 원래가 그렇게 생겨 먹었음을 진즉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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