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잘 쓰는 법_86일 차
글을 쓸 때마다 내게서 두 모습이 교차한다. 스스로 관찰한 바로 그렇다. '이론가'로서의 면모와 '행동가'로서의 면모가 그것. 이론가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글로 푸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깊이를 더하기보다는 말을 짓는 데 주력한다. 당장이라도 원고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는 여지없이 이론가다. 한시가 급한데 실천에 옮긴 뒤 체득한 바를 차근차근 글로 푼다는 건 속편한 이야기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면 나는 되도록 행동가가 되고자 한다. 블루보틀에 대한 칼럼을 기획하기 위해 성수동 매장에 가보는가 하면, '세계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600페이지짜리 《커넥토그래피 혁명》을 완독했다. 또 파이썬으로 직접 업무에 쓸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과정을 체험수기로 전하는 글을 기획하기도 했다.(세 기획 모두 지면에 옮기진 못했다. 쓰린 경험이어서 지면에 싣지도 못한 기획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나보다.)
행동가는 글의 심도를 갖추고자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단어를 쓸 확률이 높다. 인용 한번을 하더라도 그저 사람 이름과 큰따옴표 말을 엮는 수준을 넘어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서술한다. 행동가 모드에서는 문장을 다듬을 겨를이 없다. 분주하게 정보를 끌어 모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보란 글에 필요한 자료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 감각, 경험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런데 행동가에서 이론가가 되는 건 자연스럽지만, 반대로 이론가에서 행동가가 되는 건 의욕을 뺏기는 일이다. 글을 쓰다가 잠시 중간으로 새서 추가적인 정보를 조사하고 모으는 작업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든다. 같은 맥락에서 내용을 보강하기 위한 추가 인터뷰는 웬만해서는 지양하는 편이다. 반면 애초에 행동가로서 충실히 축적한 데이터를 이론가에게 바통을 넘겨 깔끔한 문장으로 버무려내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이러한 곡절을 겪고 나는 결론을 지었다. 좋은 행동가가 좋은 이론가가 되는 건 쉽지만, 좋은 이론가가 꼭 좋은 행동가가 되는 건 아니라고. 따라서 일단 좋은 행동가가 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타이핑만이 글쓰기인 건 아니다. 글쓰기를 다짐했다면 그전에 겪고 떠올리고 느낀 모든 과정까지도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