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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원짜리 '좋음'

by jd Mar 18. 2025

날마다 마시는 편의점 커피가 있다. 매일유업에서 만든 '마이카페라떼 카라멜 마끼아또 맛'이다. 요즘은 2,100원에 파는데 내가 대학생이었을 적에는 1,300원이었다. 그때부터 죽 먹었으니 족히 10년은 넘은 루틴인 것 같다. 수개월 전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받으며 의사가 "술보다 더 나쁜 게 커피예요"라고 했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주말에는 동선에 이 제품을 파는 곳이 없어서 잘 먹지 않는데,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중독까지는 아닌가 싶다가도, 평일이면 나도 모르게 이 커피를 집어 최적의 동선으로 계산대로 향하고는 한다. 심지어 한 편의점 사장님은 마지막 하나 남은 마이카페라떼 카라멜 마끼아또 맛을 내가 올 것을 예상해 숨겨두었다가 내어주기도 했다. 예약 없이 혜택을 누렸던,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에피소드다.


어떤 맛인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맛 묘사에 들어간다. 우선 우유가 많이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프림자아내는 텁텁한 맛이 덜하다. 카페인 함량은 100mg, 다른 편의점 커피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럼에도 풍부한 커피 향을 담고 있어 모금 모금이 오래도록 향긋하다. 이렇게 흔히 달달한 커피 제품이 동반하는 여러 단점을 잡아냈다. 아직도 아메리카노 맛을 잘 모르고 단 커피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최적의 맛이다.


10년간 프림 커피를 들이키며 건강을 등한시했다는 이야기를 마치 자랑인 양 늘어놨다. 그렇다고 이 루틴이 나에게 일시적인 쾌락만 준 것은 아니다. 우선 지하철에서 뭐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피곤에 찌든 몸을 비집고 명징한 정신을 깨워주는 효과를 가져다 줬다. 나아가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해줬다. 기호와 취향이라는 것이 시간에 스칠수록 변형되기 마련인데, 이토록 오랜 시간 유지되는 '좋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 뿌듯하다.


좋음의 이유, 조건, 효과 등을 파고들어 분석하다 보면 다른 좋음도 서슴없이 발견해서 1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행운이다. 어떤 처지에서든 꾸준히 좋아해야 얻어지는 결실들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도, 업무도, 취미도, 신앙도, 글쓰기도, 커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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