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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06. 2020

말 것: 독자 반응에 울고 웃고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일 차

그날은 정말 잘하고 싶었다. ICT 기업 웹진에 실을 칼럼을 진행하며 삼고초려 끝에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원래 인터뷰 칼럼이 아니었지만 새로운 개념을 정립한 사람인 만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심도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고자 했다. 여기까지가 팀원들에게 댔던 핑계고, 사실 만나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더 컸다.


학자인 동시에 기업가인 그분은 마케팅을 연구하며 창업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실험하는 박사님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연구소 1층 로비에 앉아 기다렸다. 인터뷰 시간이 되자 그분은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괜찮았다. 바쁜 사람이었고 시간을 내달라 조른 건 내 쪽이었으니.


인터뷰는 좋았다. 중간중간 환담도 오가며 예상보다 길어진 시간에 녹취 시간이 2시간 가까이 향하고 있었다. 그 파일이 저장된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했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액셀이 유난히도 잘 밟혔다.


원고를 쓰면서는 최대한 그분의 말을 각색 없이 전하고자 했다. 학자의 말을 내 용어로 다듬는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자칫 의미가 크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별한 노력을 들이는 기사인 만큼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됐다. 그렇게 완성한 기사를 박사님께 메일로 전송했다. [보내기]를 누르고도 얼마간 설렜다.


"당황스럽네요." 며칠 후 돌아온 답변이 충격이었다. 전화를 걸어 진상을 파악해보니 기사에 쓴 용어가 하나같이 내 말인 듯 아닌 듯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 이후 여러 차례 수정과 전화 통화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칼럼을 게재했지만 그 칼럼은 두고두고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내 글을 좋게 봐주길 간절히 바랐던 독자에게 거절을 당한 경험이었다.


그 인터뷰 이후 나는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글을 무조건 '샘플'이라고 여기는 이다. 잘 알다시피 샘플은 전체 제품을 사용하기 앞서 일부를 추출한 표본으로 고객의 반응을 살피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고 '지적받은 피드백을 반영한다'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이건 '사실 이건 샘플이었고 진짜  글은 그다음 글이었어'라고 생각할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


사실 지면에 실리거나 웹에 발행되는 대부분의 글은 협업과 소통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내가 쓰면 바로 글이 되는 경우는 개인 SNS 계정에서 뿐이다. 처음 보낸 글을 샘플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스스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고, 글을 더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이 글에도 수정 사항이 생길 수 있다. 금방 고치면 된다. 어차피 샘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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