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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3. 2020

말 것: 이해시키려고 한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3일 차

완벽한 기획을 썼다고 함부로 단정 지었다. 'Local & Global'이라는 주제에 맞춰 기획안을 쓰며 포르투갈 작가인 페소아를 다루고자 했다. 페소아는 70개가 넘는 필명을 가졌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치열하게 자아를 분리하며, 그 자아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세계를 작품에 녹였다. 페소아는 그 이름들을 필명이 아닌 이명(다른 이름)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분리된 자아에 몰입했다.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페소아 시인의 사례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확고해지자 기획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에 힘이 실렸다. 어쩌면 기획안을 쓸 때부터 문장에 잔뜩 힘이 들어갔을지도. 예상과 달리 기획안을 보고 설명을 들은 팀원들은 공감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이 기획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무언가에 확신이 들수록 내가 지나온 생각 회로에는 비약이 숨어 있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늘 주의를 기울인다.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자고. 글에는 태도가 담긴다. 감정이든 정보든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전하는 데 급급하면 박이지 못하고 튕겨 나가게 마련이다. 오히려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면 메시지가 더 분명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본받고 싶은 필자가 있다. 랩퍼 이센스다. 디스 랩을 제외하고, 이센스가 쓰는 가사에서 '내 말 좀 들어줘'라거나 '이걸 꼭 알아둬'라는 뉘앙스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옆에 앉은 사람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분위기다. 말투가 일상적이어서 귀에 잘 붙으면서도 솔직하게 들린다. 가령 '소신은 선택이고 성공은 좀 다른 문제' '언젠 뭐 늘 좋았나, 결국 다 지나가'라는 식이다.


그가 쓰는 글과 내가 쓰는 글은 너무도 달라서, 그의 필체까지 닮고 싶진 않다. 다만 이센스 가진 솔직함은 곡을 들을 때마다 부럽다. 단순히 용기가 있다고 해서 솔직함이 전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쓰고, 돌아보는 과정을 거듭한 끝에 생기는 능력일 것이다. 그를 부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감을 찾아 쓰고 또 써야겠다.


다짐하는 의미에서 내가 애정하는 곡을 하나 띄운다.


이센스 -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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