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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4. 2020

말 것: 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자주 쓴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4일 차

넓은 의미를 내포한 말은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주 쓰게 되고 익숙해지기 십상이다. 나는 이러한 단어가 글에서 몰입감을 앗아가는 '독소'라고 생각한다.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독자가 보는 순간 구체적인 뜻을 떠올리는 수고를 들여야 하거나, 오해할 소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노력 중이지만 이러한 단어를 자주 써버릴 때가 있다.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원고를 쓸 경우다. 조급한 마음이 이성을 잠식하면 여지없이 익숙한 패턴이 나온다. 그러면 내 원고를 컨펌해주는 팀장님은 글을 읽다가 걸리는 문장을 세모로 표시한다. 스스로 독소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단어들이다. 치부를 드러내는 마음으로 내 글에 자주 쌓이는 독소를 3가지만 공개한다.


독소 1. 업무 효율 - 업무에 드는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인지, 업무에 집중도를 높인다는 것인지, 아니면 업무의 숙련도를 높인다는 것인지?

독소 2. 편리하게 - 접근성이 개선된다는 것인지, 절차가 줄어든다는 것인지, 아니면 몸의 움직임이 간소화된다는 것인지?

독소 3. 의미 있는 성과 -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비단 글에서뿐 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자주 쓰이지만 실체가 없는 말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좋아요'나 '라이킷'이 그렇다. 좋아요 버튼을 누른 독자가 어떤 의미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 콘텐츠에 공감한다는 뜻인지, 내게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는 말인지, 아니면 내 계정을 구경 오라는 권유인지.


그렇다고 피드백 버튼을 세분화해 '공감해요' '감사해요' '응원해요' 등으로 나눈다면 분명 버튼을 누르는 독자 수는 확 줄어들 것이다. 일일이 메시지를 고르는 수고를 감수하며 피드백을 남길 독자는 많지 않을 테니. 결국 좋아요의 텅 빈 의미를 채우는 건 좋아요를 받은 사람의 희망 사항이다. 보고 싶은 대로 의미를 읽게 될 터다. 이처럼 일상 속에 넘치는 모호한 단어를 글로 옮겨오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한다.


독소를 빼기 위해 내가 마련한 장치는 결국 '거듭된 수정'이다. 영화 <신세계>에서 감명 깊었던 정청(황정민 분)의 대사가 있다. 조직의 실세인 자신을 연행한 형사에게 취조를 당하며 한 말이다. "그르케 솎아낸다고 솎아냈구먼, 아직도 (우리 조직 안에) 프락치들이 남았는가 보네요." 우습게도 이 대사를 보면 나는 내 문장에 조용히 스며들 독소를 떠올린다. 정청과 달리 나는 멈추지 않고 솎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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