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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6. 2020

할 것: 번역가가 된 것처럼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6일 차

세 번째 번역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한 달을 기다려 확인한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80점을 넘어야 합격하는 시험이 계속 70점대에만 머물자 의지가 뚝 떨어졌다. 더 도전할 마음도, 마음을 접을 결단도 서지 않았다. 정신 승리가 필요해서 "이 정도면 잘하신 거예요"라는 학원 강사님의 격려를 최선을 다해 납득하자고 생각할 뿐. 결국 번역 공부는 잠시 중단한 상태다.


내가 닿지 못한 영역이라서일까. 번역가를 보면 유독 존경스럽다. 언어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니,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그 작업이 나는 인간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린 왕자'처럼 잘못된 번역이 오래도록 상식을 왜곡한 사례를 여럿 알고 있다.(원제인 'Le Petit Prince'를 올바로 번역하면 '어린 군주'가 된다.) 번역가에게 유별난 책임감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같은 언어로 쓰인 글이라도 '번역'에 필적하는 작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사보에 싣기 위해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만드는 팀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업무 내용이 워낙 전문적이어서 답변을 들으면서도 수시로 단어 뜻을 되물어야 했다. 가까스로 개념을 정리했으나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독자가 이 개념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면 갖은 비유와 예시를 끌고 와야 했다. 평소 인터뷰 칼럼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갑절은 더 소요된 기사였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인터뷰이에게 보낸 후 얻은 답변, "수정사항 없음". 인공지능 전문가의 세계와 일반 독자의 세계를 그래도 봐줄 만하게 이었다는 생각에 잠시 벅찼다. '혹시 번역을 마친 후 드는 쾌감이 이런 감정일까?'라고 함부로 넘겨짚기도 했다. 상상하기 싫지만 만약 수정 사항이 많았다면 번역 시험에 떨어진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이런 부류에 재능이 없다고 한층 낙담했을 것 같다.


꼭 인터뷰 칼럼뿐 아니라 내 글을 쓸 경우에도 나는 '번역가 마인드'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감정, 지식, 경험 등 내가 겪은 세계를 독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쓰려면 독자의 언어로 친절하게 풀어내야 한다. 아무리 감성적인 글도 이성을 붙들고 써야 하는 이유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이러한 훈련의 연속이다. 이 점에서 모든 글은 번역본이 아닐까. 스스로 쓸모 있는 결론을 내린 것을 보면 여러 차례 준비한 번역 시험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응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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