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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7. 2020

말 것: 걸작을 남기겠다는 각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7일 차

어느 봄날 퍼블리 박소령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는 콘텐츠의 특징을 이렇게 전했다.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독자들은 경기장 밖에 있는 '관객'이나 '스포츠 기자'가 쓴 글보다, 경기장 안에 있는 '축구 선수'나 '감독'이 쓴 글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즉 전달자보다 체험자가 쓴 글이 더 독자의 마음을 이끌었다는 것. 


사보 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욕에 불탔던 나는 이 말을 듣고 힘이 빠졌다. "저는 정보 전달자이지만 제가 쓰는 기사는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소심하게나마 반박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뚜렷한 반례를 찾지 못했다. 이제는 그의 말이 종종 떠오를 때마다 속으로 깊이 수긍하곤 한다.


어차피 연구한 만큼만 쓸 수 있고, 겪은 데까지만 보여줄 수 있다. 걸작은 결심의 결과가 아니라 축적된 글과 경험이 모여 맺어지는 결실일 터다. 이 사실을 깨닫고도 곧잘 잊는 나는 지금도 가끔 걸작을 남기겠다는 의욕이 치솟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운을 떼기 앞서 망설이는 시간만 길어질 뿐 결과물은 평범했다. 오히려 평온한 상태에서 쓴 글이 더 마음에 들었을 때가 많다.


때때로 걸작을 쓰려는 기대는 내가 겪은 경험을 가벼이 여기도록 만들거나 반대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일단 '무언가 대단한 것을 써내겠다'는 마음에서부터 인정 욕구가 잔뜩 껴 있다. 앞서 '할 것: 계속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에서 언급한 대로 글쓰기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반드시 계속 쓸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경험상 직접 쓴 글 하나하나에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지속가능한 글쓰기는 요원해진다.


그러다 얼마 전 읽은 《최고들의 일머리 법칙》에서 소소한 솔루션을 발견했다. 책에서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에 대해 '스트레스 충당금'을 설정하라고 전한다. 요컨대 그 사람과 엮이는 일 중 30% 정도는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미리 정하고 출근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대치를 낮추게 되니 결과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고.


자꾸만 걸작을 쓰려고 할 때 반대로 나는 '기대 충당금'을 걸기로 했다. 어차피 30% 정도는 기대하고 시작할 테니 당연하게 받아들이자고. 그러면 은연중에 기대해버리는 내 모습을 떼어놓은 채 조금 더 의도가 분명한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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