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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26. 2020

말 것: 독자 수준을 함부로 짐작한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26일 차

누군가 쓴 원고를 지면에 옮기기 적합하게끔 다듬는 일. 사보 기자로서 하는 업무 중 하나다. 빈도를 따지자면 대략 분기별로 당혹스러운 필자를 마주한다. 어려운 신조어나 경제 용어를 풀이 없이 그대로 쓰는가 하면, 한자를 병기하며 옛 선비들이 붓을 들고 썼을 법한 글을 보내오는 필자도 있다. 그때마다 좋은 글은 이 글의 필자가 외면했던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되새기곤 한다.


학력 수준이나 전문성에 상관없이, 어려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지 않고 펼쳐놓으면 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독자는 쇼핑객, 필자는 상품 진열을 담당하는 직원 같다고. 일단 쇼핑객은 필요하거나 흥미를 끌 만한 상품을 찾아 매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직원이 제역할을 하지 않아 모든 상품이 한데 모여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면? 간절히 찾는 물건이 아니라면 손님은 당장 매장을 나갈 것이다. 쇼핑객의 한 걸음 한 걸음, 즉 생각의 흐름을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할 수 있는 상품 진열이 필요하다. 부러 고객을 응대하는 친절한 태도에 인이 박인 쇼핑몰 직원을 예로 들었다. 글쓰기에서 '친절함' 즉 '독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살펴본 바로, 글쓰기에서 친절함을 틀어막는 두 가지 속말이 있다.


먼저 '독자도 나와 비슷하겠지?'라고 단정 짓는 것. 보통은 '귀찮음'에서 비롯되는 오해다. 이것이 타성으로 굳어지면 누군가의 윤문을 거쳐야만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두려운 일이고, 나는 이 점을 항상 경계한다. 결코 독자 수준을 얕잡아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는 태도로 일일이 풀어쓸 때 짜임새가 구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군더더기는 수정 작업으로 쳐내면 될 일이다.


다른 하나는 ' 단어를 쓰면 감정이 전해지겠지?'라는 짐작이다. 대부분의 경우, 감정은 단어로 전하는 게 아니다. 독자를 상황으로 끌어들인 후 몰입하게 만듦으로써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흔히 슬픈 감정을 잘 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보고 '담담하게 불러서 더 슬프다'고 말한다. 이 말은 글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꼭 필요한 감정을 절제해서 전하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 글은 압도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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