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d Sep 27. 2020

할 것: 추상적인 것에 형태를 입힌다①

어제보다 잘 쓰는 법_27일 차

구체적인 사물을 빌리면 추상적인 말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흔히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선물하는가 하면, 조의를 표하기 위해 근조화환을 보낸다. 그저 '졸업 축하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면 허공에 흩어졌을 메시지가 꽃을 받은 사람에게는 또렷이 남는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월간 사보를 만들며 마지막 분기를 시작하는 10월호는 되도록 활력을 북돋우는 내용으로 짠다. 새해를 시작할 당시 힘이 이때까지 이어지기는 힘들기 때문. 그렇다고 10월이 7월이나 8월처럼 마냥 휴식을 권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2019년 10월호의 주제는 '일상의 원동력, 활력'이었다. 나는 '짧은 휴식'과 '충전'을 권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치타델레'를 소개하는 칼럼을 썼다. 독일어로 '요새 안에 따로 지은 보루'라는 뜻인데, 괴테는 이 단어를 '온전한 자신이 되는 내면의 영역'을 비유하는 데 사용했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어지는 현대에서 치타델레는 혼자가 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취미 활동을 즐기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독자에게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마련하고 잠시 연결을 멈춘 채 혼자가 돼 볼 것을 권한 것이다. 나아가 그곳에서 각자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삶의 동기를 찾아보자고.


이처럼 뜬구름 같은 말에 형태를 입히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광고 제작자다. 최근 나온 광고 중 이 능력이 돋보인 2개 작품을 마음대로 골라보았다.


먼저 현대해상의 '갔다 올게' 편이다. 집을 나서며 한 번쯤 말했을 법한 '갔다 올게'라는 말에 '평범한 일상'이라는 의미를 함축했다. 그리고 '이 말이 지켜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하는 나레이션은 따뜻하고 친근한 보험사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에 잃어버린 평범한 일상에 대한 상실감이 퍼진 시점에 나온 광고다. 개인적으로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다음으로 맥도날드의 '언제나 가까이' 편이다. 어느 저녁 아내와 함께 맥드라이브를 찾은 손님. 그에게는 조용히 주문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다. 손님을 위해 직원은 똑같이 조용하게 답한다. 작은 소리로 말하려면 몸은 서로에게 더 기울 수밖에 없다. 둘 사이 가까워진 거리를 통해 '언제나 고객의 생활권 근처에 있을게요' '더욱 고객에게 다가가서 소통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형태 입히기를 할 때면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든다. 글쓰기는 잡히지 않는 의미를 잡히도록 만드는 작업이라고, 그래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삶을 더 분명하게 살도록 만드는 기능이 있다고.

작가의 이전글 말 것: 독자 수준을 함부로 짐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