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d Sep 30. 2020

말 것: 내 글이 우월하다는 착각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0일 차

공모전에 당선된 사연 수기를 윤문해서 사보에 실을 일이 있었다. 직업 능력 개발 프로그램을 이수한 익명의 응모자들이 보내온 글이었다. 생계에 쫓기면서도 차비를 마련해가며 6개월간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하나같이 겸손함과 감사함이 묻어나는 글을 읽으며 이들의 건승을 기원하게 됐다.


그럼에도 글을 다듬을 때는 평가해야 했다. 구어체와 문어체 사이 균형을 맞추고,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골라냈다.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 대목을 과감히 고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총 3편의 당선작 모두 수정 작업에 손이 많이 갔다.


한결 깔끔해진 글을 보며 기분 좋게 인쇄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웬걸, 원문과 수정본을 비교하다가 잠시 망연해졌다. 원문에서 느껴졌던 생생한 감정이 수정본에서는 싹 가셔있었다. 문장이 정돈된 덕분에 잘 읽히긴 했지만 정작 수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필자의 심리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응모작을 고치며 들었던 감정이 원인이었다. 우월감. 만심과 방심을 동반하는 이 감정은 대부분의 일에서는 물론 글을 다룰 때도 역시 독이다. 내 역할이 필자의 메시지가 더 분명히 전해지도록 돕는 일임을 잊은 채, 나에게 더 편한 문체로, 더 잘 읽히는 문장으로 고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이면에는 필자의 개성보다 가독성이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태도가 깔려있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글을 바뤘다. 최대한 필자가 쓴 표현에 공감하면서 문체를 살리고자 했다. 이 글은 내 글이 아닌 필자가 쓴 글이라는 사실을 틈틈이 되새기면서. 그렇게 완성한 두 번째 수정본에서는 힘든 시기를 극복한 이의 다짐과 기쁨이 제법 두드러졌다. 


남의 글을 다룰 때뿐 아니라, 자기 글을 쓸 때도 우월감은 터부다. 전문 분야나 자신만이 겪은 특별한 경험을 쓴 글 중, 가끔 논리에 비약이 많거나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글을 본다. 나도 독자에게 생소한 개념을 전하며 불친절한 설명을 쓴 적이 더러 있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우월감을 읽는다. 


내가 만드는 월간 사보에는 대략 40여 명의 글이 실린다. 40편이면 40편이 모두 다른 글이다. 성격이 닮은 사람은 있어도 글이 닮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삶을 가졌다. 사람 사이에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면 그러한 사람이 쓴 글 또한 똑같이 소중해야 한다. 우월감에 찼던 순간을 반성하며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할 것: 나는 왜 그 글이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