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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1. 2020

할 것: 문장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1일 차

정도를 나타낼 때 숫자를 포함하면 문장에 힘이 실린다. '미미한' '적잖이' '대부분' 같은 말을 각각 '1.7%' '2분의 1' '8할'로 고치면 의미가 한층 와닿는다. 이처럼 존재를 분명하게 인지하도록 만드는 것. 숫자가 가진 힘 중 하나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문장에 감정이 밴 정도를 온도로 가늠해본다. 쓰고 싶은 글에는 별수 없이 감정이 담기는데, 이것이 논리를 방해할 정도로 퇴적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온인 36.5℃를 적정선으로 보고 문장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유념한다. '시원한' 문장으로 전해야 오히려 더 독자에게 의도한 감정이 잘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내가 기사에 썼거나, 쓸 뻔했던 문장 중 뜨거워져 버린 문장을 몇 가지 소개한다.


51℃: 그들이 말하는 직원 복지가 독보적인 이유는 탁월한 일관성에 있다. 

불과 어절 1개를 사이에 두고 '독보적' '탁월한' 같은 주관적인 단어를 썼다. 예리한 독자라면 이 문장을 읽고 '얼마나 강조하고 싶었으면 저럴까'라며 측은하게 볼 수도 있을 듯하다.


43℃: 트렌드를 집약한 공연으로 끊임없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끊임없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조금만 관대하게 풀어보면 '계속 고객과 소통하겠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비교적 찬 문장으로 볼 수 있으나 더 식힐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40℃가 조금 넘는 수치를 부여해봤다.


56℃: 앞으로 그가 펼칠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주로 글을 맺는 마지막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태다. 우선 기대하는 주체로서 필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기다 '더욱'이라는 말로 정도를 포장하기까지 했다. 


자, 이제 위 문장을 36.5℃에 맞게 식혀보자.


51℃: 그들이 말하는 직원 복지가 독보적인 이유는 탁월한 일관성에 있다. 

▶36.5℃: 여느 주먹구구식 직원 복지와 달리, 그들은 모든 업무의 초점을 '직원 복지' 하나에 두고 추진한다.


43℃: 트렌드를 집약한 공연으로 고객의 마음을 끊임없이 사로잡을 것이다. 

36.5℃: 고객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트렌드를 집약한 공연을 꾸준히 선보일 것이다.


56℃: 앞으로 그가 펼칠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36.5℃: 지금껏 이룬 결실이 말해주듯, 계속된 성과를 이어갈 것이다. 


시원한 문장을 고집한다고 해서 무조건 논리만 내세우는 글을 쓰자는 건 아니다. 다만 '독자에게 가닿는다'는 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감정보다 이성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또 그 방법이 감정을 더 객관적으로, 공감을 사는 방향으로 전하는 길을 열기도 한다.


강연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쉽다. 전할 메시지가 있어 연단에 올랐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감정적이면 급격히 설득력을 잃는다. 그러나 논리적인 발표를 이어가다가 중간중간 툭 던지는 감정 섞인 말은 공감과 위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체온을 지키는 글쓰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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